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이 ‘위대한 지도자’로서 추앙받을 수 있었던 것은 한평생을 인권신장과 실천에 바쳤기 때문이다.
지난 50년 정치인생 동안 인권유린에 시달리면서도 정작 그 자신은 야당지도자로서, 대통령으로서 어느 위치에서든 인권신장 노력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의 인권수난시대는 지난 71년부터 시작된다. 당시 그는 교통사고를 가장한 정치보복으로 사선을 넘나들었으며 이 사고로 그는 한평생 지팡이를 의지해야 했다.
2년 후에는 일본에서 정체모를 사나이들에게 납치당해 수장위기에서 구사일생으로 구조됐다. 이어 80년에는 내란음모사건 혐의로 군사재판에서 사형선고를 받기도 했다. 85년에는 가택연금까지 당했다.
이렇게 그의 정치인생은 군사정권에 의한 감옥생활 6년, 가택연금 55번, 타의에 의한 해외망명 10년이라는 인권유린의 역사로 점철됐다.
그러면서도 그는 사형선고 언도 당시 옥중에서 ‘진정으로 관대하고 강한 사람만이 용서와 사랑을 보여줄 수 있다’는 편지를 썼다.
이후 그는 98년 대통령 취임 후 ‘인권대통령’으로서의 면모를 발휘한다.
김 전 대통령은 수난시절 선언한 ‘정치보복은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며 군사정권 당시 자신을 핍박해 온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을 사면한 것.
이후 2001년 11월에는 독립기관인 국가인권위원회를 출범했다. 이는 당시 교도소나 국가기관에 의한 인권침해 개념을 장애인, 여성, 노인으로까지 범위를 넓히는 촉매가 됐다.
실제로 같은 해 여성부가 신설됐다. 인권에 대한 국민의식을 크게 신장한 것이다.
설훈 전 의원은 “당시 장애인, 여성, 이주노동자 등 상대적 약자를 정부가 보호하지 않으면 누가 보호하느냐고 역정을 낸 점도 기억에 남는다”며 “박정희 정권 시절에도 김 전 대통령은 정책은 비판해도 인간적인 비난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회고했다.
사형폐지론도 그의 강한 인권신장의 신념에서 비롯됐다. 실제로 김영삼 정부 시절 23명의 사형수가 사형집행 됐지만 국민의 정부 당시엔 단 한 번의 집행기록도 없다.
인권위는 23일 "김 전 대통령은 진정한 선진국은 국민의 인권이 보장되고, 국가가 사회적 약자들의 눈물을 닦아줄 때 가능하다고 믿었다"며 "국가인권기구 설립을 공약했고, 또 실천에 옮겼다"고 추모했다.
아주경제= 안광석 기자 novus@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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