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통령 내외 등 11개 외국조문사절단 참석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23일 오후 2시에 엄수됐다.
이날 오후 1시 40분 조악대 연주가 시작된 가운데 국회 본관 안에 마련된 빈소에서 김 전 대통령의 운구가 영결식장으로 들어섰다.
운구 뒤에는 이희호 여사와 김홍일·홍업 전 의원, 홍걸씨 등 유가족들이 뒤따랐다.
왼쪽 머리에 흰색 리본을 단 이 여사는 부축을 받은 상태로 운구에 절을 한 후 힘겹게 천천히 이동했다. 파킨스 병에 걸린 김홍일 전 의원은 의식을 모으는 듯 주의를 둘러봤다.
영결식장 영정 사진 왼쪽과 오른쪽 밑에는 각각 노벨평화상과 무궁화 대훈장이 놓여있었고, 그 아래에는 김 전 대통령을 상징하는 인동초 150가지가 장식돼 있었다.
인동초는 모진 겨울을 이겨낸 뒤 6~7월이면 시들어버리지만 전남 구례에서 극적으로 공수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영결식은 유가족과 전·현직 대통령을 비롯해 국내외 귀빈 등 사회 각계인사들이 참석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부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씨도 자리를 잡았다. .
애초 공간적 제약 관계로 참가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됐던 일반시민들 일부도 행사진행 1시간 전부터 입장했고, 나머지는 국회밖 대형 화면을 통해 영결식을 관람했다.
31도의 무더운 날씨 탓에 김홍일 전 의원은 영결식 도중 나무그늘로 이동했고 경호원들과 주위 시민들이 손으로 그늘을 만들어주며 물을 먹이기도 했다.
영결식을 찾은 많은 인사들은 중간중간에 자리에서 일어나 나무 그늘을 찾는 모습도 보였다.
국민의례와 고인에 대한 묵념, 장례 집행위원장인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의 약력보고로 시작된 영결식은 이어 장의위원장인 한승수 총리의 조사가 진행됐다.
한 총리는 조사를 통해 "민주화의 기적을 이룩할 수 있었던 것은 대통령님처럼 민주주의에 대한 강인한 신념과 불굴의 용기를 가진 지도자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통령께서 이루고자 하셨던 민주주의 발전과 평화적 통일 그리고 국민 통합에 대한 열망은 우리의 미래를 열어가는 소중한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어 박영숙 한국사회환경정책이사장(미래포럼 이사장)은 추모사를 낭독해 "지난 6월 25일 6·15 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 준비위원들과의 오찬자리에서 매일 밤 이희호 여사와 함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신다고 하시면서 목이 메어 말씀을 한참 잇지 못했던 모습이 마지막이 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안타까움을 전했다.
박 이사장은 또 "우리 민족의 숙원과 사회의 고질적인 갈등을 풀어내는 화해와 통합의 바람이 지금 들불처럼 번지게 하고 있는 것은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큰 선물"이라고 칭송했다.
이 여사는 영결식 내내 고개를 숙인 채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었다.
종교계의 추모 기도도 이어졌다.
고인이 신자인 점을 감안해 최창무 천주교 광주대교규장이 가장 먼저 종교의식을 진행했다.
그 뒤를 불교(조계사 주지 세민스님)와 기독교(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김삼환 회장과 총연합회 엄신형 대표회장), 원불교(김혜봉 대전충남교구장) 의식이 집전됐다.
이어 고인의 치적 내용을 담은 영상이 약 4분간 상영됐다.
영상은 대통령 취임식, 외환위기 극복, IT산업 활성화, 6·15 남북정상회담, 월드컵 4강 진출, 노벨평화상 수상 등이 담겼다.
고인의 영정 앞 헌화도 유가족과 전·현직 대통령 등의 순으로 이어졌다. 고인이 된 노 전 대통령을 대신해 권양숙 여사가 헌화했다.
유가족과 함께 헌화한 이 여사는 떨리는 손으로 영정을 차마보지 못하고 고개를 숙여 절을 올렸다.
헌화 도중 한 차례 깊게 눈을 감고 눈물을 삼키는 모습도 보였다.
이어 '우리의 소원은 통일' 등을 부르는 추모공연과 3군 조총대의 조총발사, 조악연주로 영결식은 끝을 맺었다.
영결식 이후 운구 행렬은 이날 낮 3시13분께 국회 영결식장을 나와 인도에 늘어선 시민의 애도 속에서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을 통과해 국립서울현충원으로 이동했다.
아주경제= 김종원·팽재용 기자 jjong@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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