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가들은 벤치마킹 대상으로 흔히 성공한 기업을 꼽는다. 성공한 기업의 경영기법은 물론 리더십과 기업 문화 등 모든 것을 복제하며 또 다른 성공신화를 꿈꾼다.
하지만 지난날 성공했던 기업의 노하우는 오히려 혁신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도 있다. 성공비결 외에 실패의 경험을 간과한 경우가 그렇다.
실패는 성공의 밑거름이다. 전문가들은 실패한 기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때 일보 전진의 여지가 더 커진다고 강조한다.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25일(현지시간) 미국 캐주얼 의류업체인 아베크롬비앤피치(A&F)의 실패사례를 통해 경기침체를 겪고 있는 기업들이 유념해야 할 몇 가지를 지적했다.
A&F는 우리나라 신세대 사이에서도 잘 알려진 의류 브랜드다. 한국에는 정식 매장이 없어 제품 구입이 여의치 않지만 해외구매 대행을 통해 A&F제품을 사려는 마니아도 상당수다. 이 회사는 미국 전역 1000여곳에 매장을 두고 있다.
그러나 정작 미국에서 A&F의 인기는 최근 들어 한풀 꺾이는 분위기다. 동일점포 기준 매출은 10개월 연속 두자릿수의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또 회사의 3대 브랜드인 아베크롬비, 홀리스터, 루엘의 올 2분기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0%나 뒷걸음질쳤다.
A&F에는 비상이 걸릴 만하다. A&F는 지난달 대학졸업생을 주요 타깃으로 삼아온 브랜드 루엘의 매장 29곳을 폐쇄하고 기타 브랜드에 집중한다고 밝혔다. 이번 매장 폐쇄에 따른 손실액은 2440만 달러로 지난 2분기 손실액 2670만 달러의 대부분을 차지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7780만 달러의 수익을 올린 것과 대조적이다.
타임은 한 때 미국 10~20대들 사이에서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A&F가 이처럼 몰락한 것은 경기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타임은 A&F를 '세계 최악의 불황 브랜드(The world's worst recession brand)'로 꼽기까지 했다.
미국 컨설팅업체인 아메리카리서치그룹의 브릿 베너 최고경영자(CEO)는 "A&F는 전 세계 경기흐름을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된 판매 방식으로 인해 경쟁사에 비해 큰 손실을 봤다"고 말했다.
잘못된 판매방식이란 가격 정책의 오류를 뜻한다. A&F가 경기침체로 줄어든 소비자들의 씀씀이를 무시하고 고가 전략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반면 경쟁업체들은 일제히 가격 인하폭을 확대하며 저가 공세를 펼쳤다.
잘못된 마케팅도 손실 규모를 키우는 데 일조했다. A&F는 신세대를 주요 타깃으로 공략해왔다. A&F는 이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 매장을 고급 상점가에 뒀다. 뉴욕 매장만 해도 '프라다'나 '구찌'와 같은 명품업체들이 즐비한 거리에 입지해 있다. 이 매장에서는 반라의 남자 모델들이 매장 입구에서 손님들을 반겼고 직원들은 매장 안에서 힙합 음악에 맞춰 춤을 췄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심화하면서 고급 상점가를 찾는 젊은이들의 수는 급격히 줄었다.
반면 대표적인 경쟁사인 에어로포스텔은 접근 방식이 전혀 달랐다. 뉴욕 매장의 경우 JC페니와 같은 중저가 업체들이 인접한 장소에 위치해 있으며 다양한 할인 행사를 펼치며 고객들을 끌어모았다. 에어로포스텔의 제품은 대부분 A&F의 것보다는 훨씬 저렴하다. A&F의 남성용 청바지 한 벌 가격은 90 달러에 달하지만 에어로포스텔 매장에서는 비슷한 제품을 30 달러에 살 수 있다.
저가전략으로 일관한 에어로포스텔은 지난 2분기 수익이 전년 동기 대비 83% 늘어났지만 A&F의 수익은 같은 기간 134% 급감했다. 청소년들의 이목을 끄는 마케팅보다는 저렴한 가격의 고객 유인력이 더 컸던 것이다. 타임은 가격이나 브랜드 이미지 역시 경기 상황에 맞춰 세밀하게 재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고가정책에 걸맞는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은 것도 실패 요소로 꼽혔다. 기업이 경쟁사와 유사한 제품을 비싸게 판매하려면 그에 맞는 추가 서비스를 제공해야 하지만 A&F는 눈에 띄는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지 않았다.
사우스캘리포니아대학의 C.W. 파크 마케팅학 교수는 "고객들을 유인할 수 있는 인센티브를 제공하면 명품 이미지는 유지하면서도 경기 한파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A&F는 정기 할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제품을 정가로 판매하면서도 주머니 사정이 나빠진 고객들을 끌어 모을 만한 당근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타임은 지적했다. 타임은 기업이 고급화 전략을 실시하더라도 고객들이 비싼 가격을 마다지 않을 만큼의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F는 패션시장의 변화에도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청소년층을 주요 고객으로 삼고 있으면서도 제품라인을 클래식한 스타일로 꾸린 것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 십대들은 클래식보다는 펑키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있다. 타임은 의류업체와 같이 소매판매를 주력으로 삼는 기업은 시장 변화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한다고 지적했다.
아주경제= 신기림 기자 kirimi99@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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