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상인들은 ‘하늘이 두 쪽 나도 노렌은 지킨다’는 철학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자신이 만든 음식이나 상품에 대해서는 목숨을 걸고 품질을 지킨다는 ‘신용정신’이다. ‘오사카의 상인들’의 저자 홍하상은 일본 내에는 창업한지 1400년이 넘는 사원건축회사 공고구미, 1200년의 역사를 가진 먹 회사 고바이엔, 1566년에 창업한 침구회사 오사카 니시카와 등 수백년의 역사를 지닌 유서 깊은 회사들이 여전히 건재해 있다고 소개한다.
내셔널 파나소닉 그룹의 창업주 마쓰시타 고노스케(1894~1989)의 일생은 오사카 상인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그의 일생은 오사카 상인들의 삶과 철학을 대변한다. 마쓰시타 그룹은 570개 계열사에 25만 명의 사원을 거느린 세계 5대 전자회사 중에 하나다. 그는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며 자수성가형 경영방식을 실천한 기업가다.
마쓰시타는 어릴 적 아버지의 쌀 도매업 실패로 하루아침에 집안의 알거지가 돼 아홉 살 때부터 남의 집 보모살이를 시작한다. 그의 두 번째 직장은 자전거포였다. 당시 자전거는 1890년 이후에 등장했고 공기를 넣은 고무타이어는 1897년이 지나서야 개발될 만큼 최첨단 상품이었다. 세 번째 직장에서는 오사카의 전등 회사 직공으로 일한다. 스물세 살에 이르러서는 오사카 전등 회사를 그만두고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조그만 공장을 차린다. 그는 하나의 소켓에 두 개의 전구를 꼽아 쓸 수 있도록 쌍소켓을 개발해내 30억엔이라는 거금을 벌어들인다.
잘나가던 그의 사업은 1929년 전 세계적으로 불황의 여파로 흔들리기 시작한다. 많은 기업들이 종업원을 해고함으로써 기업을 회생시키려고 했으나 마쓰시타는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그는 전 사원들에게 지금의 회사 경영 실태를 정직하게 모두 공개하는 ‘유리창 경영’을 도입했다. 주 2일 휴무제를 실시해 생산량을 줄이는 방법으로 고용을 그대로 유지했던 것이다. 이것은 훗날 일본의 종신고용 철학을 낳는 출발점이 됐다. 그는 무엇보다도 사람을 중시하는 경영철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쓰시타의 경영기법을 존경했던 일본의 기업가로는 아사히맥주의 히구치 히로타로 사장이 있다. 그는 스미토모 은행원 출신이었지만 대담한 발상을 시도하는 경영인이었다. 1985년 아사히 맥주는 기린 맥주의 공격과 산토리사의 맥주 시장 진출로 시장 점유율이 10퍼센트에도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그는 먼저 자사 상품의 결점에 대한 경쟁업계의 충고를 받아들였다. 소비자의 의견이라면 아무리 이율배반적이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고 불황임에도 원료는 항상 최고급을 사용했다. 그의 경영 혁신 운동은 “전례가 없으므로 해 내겠다”는 역발상의 전략으로 이어졌던 것이다.
그는 가장 중요한 맥주의 맛도 기린이 시장 점유유률 1위라고 해서 그 맛을 흉내 내지 않았다. 오히려 기존의 맥주 맛과는 완전히 다른 신제품 개발에 주력했다. 그 결과 태어난 것이 달면서 쓰다는 아사히 슈퍼 드라이다. ‘달면서도 쓰다’는 맛 자체가 이미 이율배반적이라 할 수 있지만 이러한 파격적인 맛은 소비자의 입맛을 사로잡아 아사히를 시장 점유율 1위로 끌어올렸다.
그가 슈퍼 드라이를 출시했을 때도 화려한 텔레비전 광고보다는 “왜 이 맥주가 맛있는가”라는 내용을 신문을 통해 정직하게 자세히 설명하는 정공법을 택했다. 그 내용에는 과장이 없었다. 그가 고객들에게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토대로 제품을 만들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아주경제= 정진희 기자 snowway@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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