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계 은행 국내 지점(외은지점)에 대한 유동성 규제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외은지점의 급격한 달러 유출로 외화자금 시장에 공급되는 달러 양이 줄어들고, 이 때문에 국내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까지 급등하자 외은지점의 달러 유출입에 대한 규제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섣불리 규제 카드를 꺼내면 '득보다 실이 많다'며 반대의 목소리를 내는 데다 금융당국도 국제사회 논의에 발맞춰 접근하겠다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여 찬반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29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9월 금융위기 이후 작년 10월 말부터 올해 9월 말까지 1년 동안 외은지점을 통한 달러 순유출 규모는 244억2000만 달러로 집계됐다.
역대 같은 기간으로 달러 순유출 규모를 따지면 사상 최대치다.
이 기간 국내은행 등 전체 예금취급기관을 통한 달러 순유출 규모인 363억1300만 달러의 67%에 달한다. 대부분 외은지점을 통해 달러가 빠져나갔다는 의미다.
외은지점의 달러 순유출입 규모를 보면 지난해 3분기 136억5200만 달러 순유입에서 지난해 4분기 243억5900만 달러 순유출로 전환된 뒤 올해 1분기에도 28억71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그러다 올해 2분기에 17억6900만 달러 순유입으로 돌아섰으며 3분기때도 10억4100만 달러 순유입을 기록했다.
한은 관계자는 "금융위기 이후 국제 금융시장에서 디레버리징(차입이나 부채를 축소하는 것) 현상이 나타나 외은지점이 투자은행(IB) 등에 빌린 차입금을 갚으면서 달러가 큰 폭의 순유출을 기록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금융위기가 진정되자 외은지점이 다시 외화자산 운용에 나서면서 본점으로부터 달러 차입을 늘려 올해 2분기부터는 순유입으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금융위기 전까지만 해도 외은지점은 단기외채 급증의 주범으로 꼽혔었다.
외은지점은 본점에서 단기로 달러를 빌려와 국내 채권이나 파생상품 등에 투자하는데, 이러한 단기차입이 국내 단기외채 통계로 잡히면서 한국 금융시장에 대한 우려를 낳았다.
실제로 외은지점의 단기외채는 2005년 말 233억700만 달러, 2006년 말 518억3500만 달러, 2007년 말 793억4500만 달러 등으로 급증했다.
하지만, 금융위기 이후인 작년 말에는 677만9900만 달러로 감소세를 나타냈다. 이번에는 반대로 달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외은지점으로부터 달러가 한꺼번에 빠져나가자 국내 은행들이 달러 구하기가 어려워지고 원·달러 환율도 급등세를 탔다. 외은지점에 대한 달러 유출입의 문턱을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게 된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외은지점에 대한 규제에 대해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당장 적용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19일 금융위원회는 `외환건전성 제고 및 감독 강화 방안'을 내놓았지만 외은지점에 대해서는 유동성 비율 규제 등 직접 규제는 적용하지 않기로 한 바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한국과 같은 소규모 개방경제인 국가들은 외은지점의 자금 유출입으로 인해 불안한 상태에 노출돼 있다"면서도 "규제를 하려면 국제사회와 함께해야지 우리가 단독으로 하면 실효성도 없고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외은지점 규제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찬반이 엇갈리고 있다.
우선 규제에 찬성하는 쪽은 국내 은행과의 규제 불균형과 급격한 외화자금 유출에 따른 부작용을 근거로 들고 있다.
LG경제연구원 배민근 연구원은 "외은지점은 우리 경제의 울타리 안에서 활동하는 독특한 성격의 외국 자본인데, 그간 적절한 규제 가이드라인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싱가포르국립대 신장섭 교수는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외은지점은 지난해 위기 때 원화가치 하락에 베팅하고 달러를 빼 간 환투기 의혹이 짙어 달러 유동성 부족을 일으킨 혐의가 있다"며 강력한 규제를 주장했다.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국제경제연구실 김근영 과장은 "2003년 이후 외은 지점을 통해 단기 외채 유입이 늘어나면서 전체 은행권에 단기 조달-장기 운용의 만기불일치 현상이 심화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 경우 국제금융시장 경색으로 단기외채의 만기연장이 어려워지면 은행들이 상환을 위해 일제히 장기채권을 팔아야 하기 때문에 채권 가격 급락과 유동성 부족 사태가 초래될 위험성이 높아진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금융기관이 과도하게 위험에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외은지점 규제의 실효성 등도 따져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반면, 은행권 관계자는 "외은지점은 본점에서 싼값에 달러를 조달해 국내에 공급하기 때문에 국내 은행들이 오히려 혜택을 보고 있다"면서 "외은지점은 국내에 영업 기반을 두고 있어 핫머니 성격으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금융연구원 이윤석 연구위원도 보고서를 통해 "외은지점들이 보유한 국내 채권규모는 9월 말 현재 49조 원에 달한다"며 "외은지점에 대한 유동성을 규제하면 국내 채권시장에 미칠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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