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생활에 꼭 필요한 상품 및 용역을 제공하는 기업들이 전문적인 지식 없이 신용평가업체가 제공하는 개인정보를 무분별하게 활용해 애꿎은 소비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자영업을 하는 K씨는 최근 딸에게 휴대폰을 사주기 위해 SK텔레콤 대리점을 방문했으나 면책 기록 때문에 개통이 불가능하다는 통보를 받았다.
K씨는 "법원의 면책 판결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기로 다짐했지만 면책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여전히 냉담하다는 것을 느꼈다"며 "사회에서 소외당하고 있는 현실을 딸에게 들킨 것 같아 속상했다"고 토로했다.
면책 기록은 공공정보로 분류돼 불량정보로 활용할 수 없지만 대부분의 신용정보업체는 면책자를 채무불이행자로 분류하고 있다. 일반 기업들은 신용정보업체가 제공한 자료를 토대로 상품 및 용역 거래를 제한하고 있다.
공공정보를 채무불이행정보로 잘못 인식해 불이익을 주는 것은 이동통신업계에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인터넷 가입, 도서 구입, 렌터가 이용, 정수기 및 비데 구입 등 금융거래가 이뤄지는 대부분의 업계에서 비슷한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공공정보 기록을 가진 P씨는 지난해 말 통합 LG텔레콤(옛 LG파워콤)에 초고속 인터넷 가입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했다. P씨의 공공정보가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의 데이터베이스(DB)에 채무불이행정보로 등재돼 있었기 때문이다.
공공정보가 불량정보로 활용되고 있는 데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신용평가업체에 있다.
금융기관으로부터 신용정보를 수집하는 은행연합회는 공공정보를 불량정보로 활용하지 못하도록 명시하고 있지만, 신용정보업체는 이를 채무불이행정보로 가공해 기업에 제공하고 있다.
한 신용평가업체 관계자는 "워크아웃을 진행 중이거나 면책 기록이 있는 사람들은 금융거래가 많지 않아 신용도를 판단할 근거가 거의 없다"며 "결국 과거 기록을 바탕으로 신용도를 평가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기업들은 거래 과정에서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정보를 원한다"며 "공공정보를 별도 코드로 분류해 제공해도 기업 측에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덧붙였다.
LG텔레콤 관계자는 "신용평가업체가 제공하는 자료를 일원화하기 위해 이동통신 3사가 한국신용평가정보만 이용하고 있다"며 "한신평정에서 공공정보를 어떻게 가공해 보내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공공정보가 채무불이행정보로 둔갑해도 업계에서는 그대로 받아 쓸 뿐 이를 구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정부의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지만 관련 당국은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
이동통신사들의 불합리한 회선 제한에 항의하는 민원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관리 감독권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는 "사업자를 강제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외면하고 있다.
방통위는 "공공정보를 근거로 이동통신 가입을 제한하는 것은 사업자의 자율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는 사안"이라며 "워크아웃이나 면책 등으로 공공정보에 등재되면 일정 기간 신용상의 불이익을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gggtttppp@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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