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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시리즈 6] 반도체 정보수집에 10년..사업승률 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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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2-19 1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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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전 44승 11무 2패.’

프로야구 팀의 기록처럼 보이는 이 전적은 호암이 26세에 처음 사업을 시작한 이후 1986년 삼성경제연구소 창립에 이르기까지 반세기 동안의 사업 전적이다.

토지사업 당시 과도한 은행 융자와 때마침 중·일 전쟁 발발로 그동안 이룬 정미업과 운수업을 모두 매각해야 했던 청년시절의 실패와 ‘사카린 밀수’ 사건으로 잘 알려진 한국비료의 원자재 유출 사건은 호암의 일생에서 가장 뼈아픈 두 차례의 좌절이었다.

하지만 이를 제외한 호암의 사업은 모두 성공을 거뒀다고 할 수 있다. 11번의 사업 무산 역시 패배라기보다는 한국 정치 정세 등에 따른 피치 못할 포기였다. 1963년 설립한 동양방송(TBC)은 군사정권의 언론통폐합에 의한 것이었다. 은행업 역시 박정희 전 대통령(당시 육군 소장)에 의해 발발한 군사 혁명으로 인해 정부에 헌납해야 했다.

◆매년 1차례 이상 사업 시도...승률 96%

이 같은 특수한 상황을 감안하면 호암은 자신이 벌인 사업에서 승률 96%에 달하는 놀라운 성적을 거뒀다. 특히 57차례의 사업이 1936년부터 1986년까지 51년 동안 시도됐다. 매년 한차례 이상의 사업 확장에 나선 것.
 
이처럼 단기간에 수많은 사업을 시도하고, 대부분의 사업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었던 비결은 ‘인재’를 아끼고 이들이 제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했기 때문이다.(본지 1월26일자 참조) 그리고 다음으로는 정보의 힘을 일찍이 간파한 호암의 선견지명이 꼽힌다.
 
세계적인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는 1980년 그의 저서 ‘제3의 물결’에서 2000년대를 정보 혁명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제1의 물결인 ‘농업혁명’과 제2의 물결인 ‘산업혁명’을 거쳐 그 다음은 정보가 새로운 세대의 패러다임을 제시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호암은 엘빈 토플러의 예언이 있기 전부터 정보의 중요성을 간파했다. 또한 범람하는 정보 속에서 제대로 된 참 정보와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추릴 수 있는 능력도 갖고 있었다.

◆정보가 곧 기업의 경쟁력
 
그에게는 보통 사람들이 그냥 지나치기 쉬운 정보도 자신의 것으로 소화하는 능력이 탁월했다. 삼성의 신사업 진출 이전에 반드시 거쳐야 했던 ‘도쿄 구상’은 호암의 이러한 능력을 잘 보여준다.
 
1959년 호암은 폭설로 인해 일본 도쿄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타지 못했다. 호텔에서 비행기 운행을 기다리는 동안 그는 세계의 정치·경제·사회·문화를 조명하는 일본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하게 됐다.
 
일반인에게는 단순한 TV 시청에 그칠 수 있었던 일이었다. 하지만 호암은 이를 통해 국내에서 접하기 힘든 세계의 정보를 접하고, 삼성의 새로운 사업의 도전 기회로 받아들였다.
 
이를 계기로 호암은 매년 정초에 도쿄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일본에서 수많은 정보를 접하고 이를 사업에 반영했다. 전자·반도체·조선 등 현재 삼성의 주력이 된 당시 신사업 구상 역시 도쿄에서 태동했다.
 
삼성물산의 도쿄 지점장을 지낸 이길현 경원 회장은 “이 회장은 도쿄에 머무는 동안 많은 사람을 만났다”며 당시를 회고 했다. 이 전 지점장에 따르면 호암은 일본 반도체의 어머니로 불리는 샤프의 사사키 부회장을 비롯해 신일본제철 이나야마 회장, 이토추종합상사 세지마 회장 등 주요 기업의 인사들을 만났다.

◆반도체 진출, 정보 수집만 10년
 
그리고 이들과 만나면 주로 그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는 것이 이 전 지점장의 설명이다. 새로운 사업을 구상할 때도 해당 분야에서 성공한 인사 뿐 아니라 실패한 사람, 답보 상태인 사람 등을 만나 이들의 강점은 자신의 것으로 습득하고, 잘못된 부분은 ‘타산지석’으로 삼았다.
 
호암은 중요한 사업과 관련한 사안에 대해서는 수많은 정보를 직접 체득했다. 그리고 이를 조합해 사업에 확신이 설 때 비로소 일을 시작했다. 반도체 산업에 호암이 관심을 갖은 것은 1973년부터다. 그러나 삼성이 본격적으로 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2년이다. 반도체 관련 국내외 인사들의 의견을 묻고 해당 사업의 발전 가능성 등 다양한 정보를 수집한 끝에 10년 만에 실행에 옮긴 것.
 
호암은 경영인 등 재계 고위층 뿐 아니라 일반 서민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을 만나 그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모두 모았다.

◆정보 중시 문화, 삼성 DNA로
 
호암은 자서전인 ‘호암자전’을 통해 도쿄의 모리타(森田) 이발소를 소개하며 일본의 장인정신에 대한 감회를 밝혔다. 그리고 이는 삼성의 ‘품질제일주의’로 발전해 세대를 넘어 삼성의 DNA로 자리 잡았다.
 
또한 호암은 현지법인의 가장 큰 역할로 ‘정보수집’을 꼽았다. 아울러 최신 정보기술과 세계 시황, 경쟁사 동향 등을 적극적으로 찾아내기 위해 도쿄에 ‘정보센터’를 만들 것을 지시했다.

그리고 이러한 정보수집 및 활용을 삼성그룹 전체 문화로 확대했다. 한때 “삼성 비서실의 정보 능력이 안기부(현 국정원)보다 뛰어나다”라는 말이 나온 것 역시 정보를 중요하게 여긴 호암의 의지에서 비롯됐다.
 
“정보라는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수단”이라고 강조한 호암의 뜻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삼성 전사 직원들의 업무 처리 과정은 성공과 실패 여부를 가리지 않고 문서화돼 전해진다.
 
당장의 성패를 떠나 이를 정보화함으로써 다음번 도전자들이 이를 활용해 성공비결을 빠르게 습득하고, 실수를 거듭하지 않도록 한 것. 그리고 이를 통해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으로 도약하는 디딤돌을 형성했다.

아주경제= 특별취재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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