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Km에 달하는 석탄운반 철길 핑시선(平溪線)은 그 길을 따라 대화(大華), 쓰펀(十分), 만고(萬古), 영각(嶺脚), 평계(平溪), 청동(菁桐) 탄광마을을 형성했다.
기차 안에서 나이가 지긋한 할머니(?)와 마주 앉게 됐다. 할머니는 매일 이 열차로 평계의 집에서 타이베이로 출퇴근 한단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 했더니 “멀리서 오느라 수고했다”며 선듯 맛있는 종지를 나눠줬다. 반딧불을 볼 수 있는 여름이면 핑시선 마을들이 더욱 아름답다며 여름에 다시 한 번 꼭 오라고 한다. 친절하고 평화로운 타이완 사람들의 포근함에 길 위를 달리는 여행자의 마음이 촉촉하게 젖어온다.
핑시선 마을들은 과거 탄광이 번성했을 때 북적였던 흔적만 남아있을 뿐 이제는 너무도 조용해 오히려 적막하다.
시간이 정지된 도시. 빛바랜 풍경화 같은 도시. 그 곳을 가로 지르는 핑시선 열차가 달린다.
나는 어린 시절 늘 기차 맨 뒤로 가서 밖이 보이는 창에 이마를 대고 철길이 자꾸만 멀어지는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좋았다. 내가 있는 곳을 벗어나 어디론가 떠나고 싶었던 것일까? 핑시선 열차 맨 뒤 칸에서 털컹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어린 시절로 돌아간 듯 철길이 자꾸만 멀어지는 것을 지켜보았다. 핑시선 마을의 지붕들이 조용조용 소리를 낮추고 이야기를 나누는 듯 정겨웠다.
핑시선 기차 여행코스는 그리 길지 않아 한 역 한 역 들러 구경해도 하루면 모두 볼 수가 있다. 쓰펀 역에 내렸다. 한국말로 십 분인 역 이름이 좋았다. 십분 만족이라 하면 한국어의미로 아주 만족스럽다는 뜻이다. 쓰펀 역 안에서 몇 안 되는 사람들을 구경하고 철길 위를 천천히 돌아 다녔다. 흔들다리도 가보고 손님이 없는 양장점에도 들리고…. 평일 오후라 그런지 쓰펀은 시간이 멈추고 나만 움직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한가로웠다. 밀린 숙제하듯 바쁘게 여행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림 같은 쓰펀에서 나도 쓰펀과 어울리는 그림의 소재가 되고 싶었다. 한국에서 너무 숨차게 살았던 나에게 쓰펀의 빈둥거림이 오히려 즐거웠다.
철길을 따라 걷는데 천등(天燈)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저는요 한국에서 왔고요. 천등 날리는 사진 찍어도 될까요?”라고 양해를 구했다.
그러자 천등 날리는 것을 돕던 남자분이 서둘러 가더니 부인을 데려 왔다. 대만남자와 결혼해 쓰펀에 살고 있는 한국 분이었다. 3개월 만에 만나는 한국사람 이란다. 그녀는 너무 반가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 쓰펀에서 천등을 만들어 파는 가게를 하고 있었다. 가게가 바빠 한국에 다녀 온지도 오래 됐단다. 자신의 가게에 왔으니 천등을 꼭 날리고 가야한다며 손을 끈다. 천등에 소원을 썼다. 함께 간 대만친구도 소원을 썼다. 끝도 없다.
“무슨 소원이 이렇게 많아? 할 말 있으면 나에게 말해 봐. 무슨 소원이 이렇게 많아?” 나의 핀잔에 친구는 “이루지 못하는 소원이 있을 때 천등에게 말하면 하늘에 전달해 그 소원이 이루어진대. 천등은 날아도 너는 못 날잖아?”
“….”
기름종이에 불을 붙이자 우리의 소원을 싣고 천등이 쓰펀 밤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나의 소원을 아는지 뜨겁게 타오르는 천등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날아올랐다.
천등은 날지 못하는 인간들의 하늘을 나는 것에 대한 동경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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