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리즈 35] 이혼 아픔 딛고 글로벌 현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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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3-25 2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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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삼성가는 물론 국내를 떠들썩하게 한 소식이 전해졌다. 삼성의 황태자 이재용 부사장과 대상그룹 임창욱 명예회장의 맏딸 임세령 씨가 결혼생활 11년 만에 파경을 맞은 것.
 
이 부사장은 1997년 일본에서 MBA를 마치고 미국 유학길에 오르기 직전 연세대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임씨를 만났다. 이들의 만남은 양가 어머니들의 주선으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1년여 교제 끝에 이 부사장은 1998년 6월 결혼했다.
 
이들의 결혼은 큰 화제가 됐다. 영남 기반 재벌가와 호남 가문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양가는 과거 끈질긴 라이벌 관계였다. 이 부사장의 할아버지인 이병철 선대 회장은 생전에 ""세상에서 내 맘대로 안 되는 것은 세 가지 있는데 자식과 골프, 미원(대상의 대표 조미료)이다"라고 했을 정도였다.
 
임씨는 이혼소송을 통해 10억원의 위자료와 5000억원 상당의 재산 분할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슬하에 둔 1남1녀에 대한 양육권도 청구했다. 이후 양측은 합의를 통해 이혼소송을 마무리했다. 구체적인 조건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경영승계를 준비 중인 이 부사장은 큰 타격을 받았다. 재산분할로 인해 안정적 경영권 이양을 위한 자금도 상당부분 손실됐다.

해외 활동에도 비상등이 켜졌다. 애플 등 주요 거래처와 미팅을 위해 미국에 출장 중이었던 이 부사장은 일정을 급작스레 취소했다. 이 부사장은 미국의 주요 통신사인 AT&T가 주관하는 ‘페블비치 내셔널 프로암 대회’ 출전도 포기했다. 이 대회는 프로골퍼와 유명인이 조를 이뤄 라운딩을 하는 골프대회다. 특히 이 부사장은 프로골퍼 최경주와 라운딩을 하기로 했었다.
 
이혼소송 하루 뒤인 13일 오후에는 아버지인 이건희 회장이 서울 일원동 삼성의료원에 입원했다. 삼성 측은 건강검진을 위한 내원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이혼으로 인해 충격을 받아 입원했을 가능성도 높다. 이 회장은 지난해 11월 선친인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21주기 추모식에도 참석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안 좋았다. 하나뿐인 아들의 이혼 소식이 건강을 더욱 악화시켰다는 소문도 돌았다.
 
2008년 김용철 전 삼성 법무팀장의 비자금 폭로에 이어 이혼으로 인해 이 부사장은 큰 부담을 안게 됐다.
 
비자금 폭로 이후 이 부사장은 삼성 내 모든 직분을 버리고 백의종군하며 해외 거래처 관리에 힘써왔다. 해외시장 개척 등을 통해 경영능력을 인정받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이를 통해 이 부사장의 이미지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하지만 임씨와의 이혼은 1년 가까이 계속된 이 부사장의 활동을 덮어버렸다.
 
세간에서는 이혼 사유와 위자금 액수를 두고 검증되지 않은 풍문이 돌았다. 이 가운데 상당수는 이 부사장의 도덕성에 흠집을 내는 내용들이었다. 김용철 파문 이전부터 경영권 승계 작업에 대한 시민단체들의 비판과 경영능력이 검증되지 않았다는 우려가 있었다. 여기에 루머까지 돌면서 이 부사장의 경영권 승계는 더욱 소원해졌다.
 
고모들 역시 부친인 이 회장에게 “자기 가족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는데 삼성이라는 큰 조직을 어떻게 이끌겠느냐”며 이 부사장을 강하게 질책한 것으로 알려졌다.
 
자녀들과 관련한 문제도 불거졌다. 자녀들에 대한 친권은 이 부사장이 갖지만 양육권은 임씨와 번갈아 갖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부사장의 자식 사랑은 남다른 것으로 알려졌다.
 
바쁜 업무와 잦은 해외 일정 속에서도 이 부사장은 짬을 내 자녀들과의 시간을 갖았다. 실제로 이혼 후인 지난해 4월 이 부사장은 아들인 지호군과 농구장을 찾아 부자간의 정을 나눴다. 며칠 뒤에는 김연아쇼에 딸과 함께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아픔 속에서 이 전무는 오히려 활발한 글로벌 경영을 지속했다. 지난해 2월 출국했던 이 부사장은 이혼 과정 속에서도 해외에 머물러 글로벌 행보를 계속했다. 이혼소송이 알려지면서 일정은 재조정됐지만 이 부사장은 해외근무의 주둔지인 중국 상하이를 기점으로 유럽과 일본을 돌며 해외 거래선을 만나는 데 온 힘을 쏟았다.
 
이후에도 미국에서 중국으로 갔다가, 곧이어 유럽을 방문했고, 이후 중국-일본-중국-일본 등을 방문한 후 지난 출국 40여일만인 지난해 3월 17일 귀국했다. 보름도 되지 않아 이 부회장은 다시 대만을 방문해 반도체와 LCD 주요 거래선과 만남을 가졌다.
 
이혼 이후 오히려 활발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지난해 9월부터는 그동안 자제해왔던 언론과의 만남도 가졌다. 이 부회장은 4일 캐나다 캘거리에서 열린 국제기능올림픽 주요 종목을 직접 둘러보고 “기업의 힘은 현장·기능인력”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운 좋게 좋은 부모를 만나고 훌륭한 선배를 많이 만나서 혜택을 많이 보고 있다”며 개인적인 소회를 드러내기도 했다.
 
캘거리 다음 행선지는 유럽 최대 가전전시회인 ‘IFA’였다. 캘거리에서 독일 베를린으로 기수를 돌린 이 부사장은 직접 전시장을 돌고, 주요 경영진들과 회의를 가졌다.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는 해외투자와 유럽시장, 경영실적에 대한 생각을 가감없이 밝혔다.
 
이혼 이후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된 자리에서 오히려 자신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한 것. 그간 해외를 돌며 쌓은 자신감과 인맥, 경험 등을 토대로 한 것이다. 이후 이 부사장은 정기인사를 통해 최고운영책임자(COO)라는 직책을 맡는다. 비자금 파문 이후 무든 직책에서 물러난지 1년반 만에 더욱 중요한 중책을 맡게된 것.
 
그리고 지난 1월 미국에서 열린 가전전시회 ‘CES’에서는 삼성전자 부스를 찾는 주요 인사들을 직접 맞으며 호스트 역할을 했다. 이혼을 비롯해 자신을 둘러싼 수많은 갑론을박 속에서 이 부사장은 오히려 한단계 더 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이 부사장은 최근 신흥시장 개척과 신사업 추진 등 새로운 성장 가능성을 모색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이 부분에서 삼성과 국민들의 기대를 충족하는 성과를 거둬야만 비로소 이 부사장은 세간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잠재우고 미래 삼성을 이끌어갈 재목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아주경제 특별취재팀 ehn@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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