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시리즈 42]이건희의 용인술과 이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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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4-08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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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하늘 기자) 2009년 1월 삼성전자는 파격적인 인사를 발표했다. 회사의 양대 축이었던 이기태 부회장과 황창규 사장이 경영일선에서 동반 퇴진한 것.
 
이 전 부회장은 삼성을 세계 3대 휴대폰 브랜드로 끌어올린 일등공신이다. ‘Mr. 애니콜’이라는 별명이 나온 것도 애니콜의 선전을 그가 이끌어왔기 때문이다. 애니콜 명품화를 통한 브랜드 이미지 상승과 신흥국을 겨냥한 중저가 앤트리폰 라인업 확충은 삼성 휴대폰이 확고한 세계 2위에 오르는데 큰 역할을 했다.
 
황 전 사장 역시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 황금시대를 이끌었다. 반도체 메모리 집적도가 1년에 2배씩 증가한다는 ‘황의 법칙’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 유명세를 탔다. 최근에는 ‘국가 CTO’에 선임되며 대한민국 기술 혁신을 이끌 채비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들은 전성기의 나이에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이들이 물러난 것은 이재용 시대를 구축하기 위한 포석이라는게 재계의 추측이다. 이재용 부사장이 경영 전반을 통솔하기에는 이들의 목소리와 세(勢)가 너무 커졌다는 것. 아울러 자신의 세를 규합하는 모양새가 드러나면서 이건희 회장의 화를 샀다는 후문도 이어졌다.
 
이 회장의 용인술은 냉혹할 정도로 단호하다. 과거 삼성의 발전을 이끌어 왔다 해도 미래 삼성을 위한 인사 원칙을 지켰다. 이 회장 역시 회장 취임 초기에 기존 삼성의 주요 경영진들과 힘겨루기에 역량을 소진했다. 이러한 부작용을 막기 위한 포석이라는 것이다.
 
반면 당시 이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조명을 덜 받았던 최지성 사장이 급부상했다. 지난해 12월 인사에서는 삼성전자의 대표이사직을 맡았다.
 
최 사장은 엔지니어 출신들을 중용해온 삼성전자에서 보기 드문 상경계 경영진이다. 입사도 삼성물산에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삼성이 글로벌 전자업계에서 마이너 기업에 머물러 있던 당시 홀홀단신으로 유럽 등을 돌며 삼성 제품을 알리는 역할을 맡았다. ‘디지털 보부상’이라는 별명도 여기서 나왔다.
 
삼성이 한창 스타 CEO 배출에 힘을 쏟을 때에도 디지털미디어 부문의 내실 다지기에 주력했다. 그 결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LED TV에 이어 올해 3D TV를 성공적으로 론칭하며 세계 TV 시장 트렌드를 주도하고 있다.
 
삼성의 얼굴인 반도체와 휴대폰은 여전히 세계 2위에 머물러 있다. 하지만 TV는 이미 4년 연속 글로벌 1위에 올랐다. 1998년 디스플레이 사업부장(전무)을 맡은 이후 20년 이상을 TV 등 가전 사업에 집중한 결과다.

최 사장은 ‘이재용의 최측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재계에서는 윤종용 이후 삼성의 대표 장기 CEO로 최 사장을 꼽는다. 하지만 최 사장은 여전히 자신의 세를 규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맡은 업무에 충실하고 이에 걸맞은 성과를 거뒀지만 이를 내세우지 않는 ‘겸손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고 있는 것.
 
아직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의 용인술은 알려진 바 없다. 차기 경영자로서 앞에 나서기 보다는 아직 뒤에서 업무를 경험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다만 이 부사장은 부친에 비해 직원들과의 스킨십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지난해 12월에는 수원 사업장 구내식당에 들려 글로벌 경영 전략회의에 참석한 임원들과 자리를 함께 했다. 이날 만찬 자리에서 이 부사장은 소주와 맥주 잔을 기울이며 임원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눴다. 캐주얼한 자리에서는 폭탄주를 돌리기도 한다. 선뜻 가까이 하기 부담스러운 오너일가의 격을 지우고 소탈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
 
이 부사장은 지난해 7월에도 해외법인장 회의 뒷풀이 자리에 참석했다. 공식석상이 아닌 자리에 예고없이 모습을 보이는 등 실무진들과 격의없는 대화의 자리를 자주 갖는 편이다. 과거 선대 회장들이 제왕의 리더십을 통해 조직을 통솔했다면 이 부사장은 부하직원들과 눈높이를 맞추는 조용한 리더십을 키워가고 있다.
 
부사장 승진 직후에는 “최사장님이 지시하는대로 따르겠다”며 대표이사인 최 사장을 존중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과거 삼촌인 이맹희·이창희 형제가 그룹 내에서 목소리를 높이다 오히려 이병철 선대 회장의 화를 산것과는 대조적이다.
 
윗사람에 대한 예우와 주니어급 부하직원에 대해서는 예의바른 태도와 격의 없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이 부사장은 부친인 이 회장과는 또다른 리더십과 용인술을 펼쳐나갈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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