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 세계정상회의 개최를 계기로 국격을 높이자는 논의가 시작되고 있다. 국가품격은 국토의 문화적 품격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한 국가의 품위와 수준 높은 정신문화는 국토공간에 투영되고, 이는 다시 국민의식 수준과 행태에 영향을 미친다. 문화적 가치가 높은 도시가 경제적으로도 선호된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 있듯이 국토의 문화적 품격은 국토의 경제적 경쟁력과도 직결된다. 때문에 인구 저성장 시대를 맞아 경제개발의 현장이었던 국토를 문화적 시각에서 재정비하여 국토품격을 높일 필요가 있다.
우선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훼손된 국토를 회복시킬 수 있도록 국토관리의 기본틀이 바뀌어야 한다. 급격한 개발시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 개발해서 사용하고 있는 도시용지는 전 국토의 7% 정도다. 도시용지 비율은 인구가 최정점에 달하는 2020년에 이르더라도 최대 10%를 넘지 못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보전에 필요한 곳을 우선 골라내고 나머지를 개발하더라도 경제성장에 필요한 개발용지를 공급하는 데 문제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지금부터는 개발비용이 적게들고 경제적 효용성이 높은 곳을 먼저 개발하는 국토관리 개념에서, 역사문화적·생태적으로 중요한 지역을 먼저 골라내 보전한 다음, 보전가치가 떨어지는 공간을 개발하고 이용하는 형태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개발지향적으로 구성된 각종 법령기준 및 공간계획 수립 지침 등을 재정비해 중요 유적이 개발로 훼손되거나 고층 건물에 의해 차단되는 문제를 없애야 한다. 각종 개발사업으로 인해 그 지역의 역사성과 장소성이 훼손되는 문제를 사전에 조율할 수 있도록 시·군단위의 역사문화관리계획을 마련하는 것도 한 방안이 될 수 있다. 또 지역의 역사문화적 맥락이 개발사업에 의해 개별적으로 훼손되거나 끊겨나가는 문제를 사전에 차단해 지역의 역사적 고유성과 문화적 품질을 높이는 작업도 필요하다. 나아가 개별 지역과 도시 뿐 아니라 국토가 가진 다양한 역사문화의 흐름을 씨줄 날줄로 엮어 국토의 역사문화축을 구축함으로써 역사가 흐르는 국토를 만들어 국토 전반의 문화적 품질을 높여나가는 작업도 추진할 필요가 있다.
국토의 문화적 품격을 높이는 작업은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시간과 비용을 필요로 하므로 선택과 집중전략이 필요하다. 한 나라의 문화적 품격을 대표적으로 읽어낼 수 있는 곳이 그 나라의 수도이다. 현재의 수도와 함께 과거에 수도 기능을 했던 고도(古都)를 국토의 품격을 높일 수 있는 선도지역으로 활용하는 방안이 강구될 필요가 있다. 고도(古都)는 한 시대의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에 일반도시와 달리 국가통치의 기록과 흔적을 가진 곳으로 국가적 차원의 정체성과 상징성이 투영돼 있는 장소다. 왕도(王都)만이 갖는 유·무형의 흔적인 왕궁, 왕릉, 성곽 등이 있고 국가통치와 관련된 역사적 사실이 한정된 공간에 함축돼 있기도 하다. 따라서 고도에 분포한 문화재만이 아니라 그 주변의 역사문화환경을 계획적으로 관리할 경우 우리나라의 역사적 정체성과 문화적 고유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관광가치도 높일 수 있다. 로마나 런던, 파리, 교토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대부분 고도였거나 현재 수도 기능을 하는 곳이다.
문화의식이 높은 국민이 품격 높은 문화국토를 만든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재가 자산가치를 떨어뜨리는 혐오시설로 간주되는 풍토부터 개선돼야 한다.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등 유럽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역사유적을 보존하는 지역 주민에 대해 정부가 보상하거나 지원하는 제도가 없다. 이유는 문화재로 보존되는 지역의 자산가치가 높아 경제적으로 손해보는 일이 없어 문화재를 지키며 역사적으로 중요한 지역에 산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도 문화국민 운동을 전개해 중요 유산을 보전하는 부담을 전 국민이 나누어 지는 제도적 틀을 구축함과 아울러 기부문화를 확산시켜 나감으로써 주민이 자부심과 긍지를 가지고 문화유산을 지켜나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국토의 문화적 품격은 관광객을 위한 문화시설 건설이나 관광수입을 올리기 위한 관광지 개발보다 전 국민이 일상생활에서 역사문화 자산을 아끼고 즐기는 문화가 정착될 때 더 높아질 수 있다. 관광을 위한 국토의 역사문화 자원화가 아니라 국민의 풍요로운 문화적 삶을 위한 역사성과 장소정신을 살려나갈 때 국토의 문화적 품격이 높아지고 세계적인 관광경쟁력도 높아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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