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회장’(고(故) 정주영 명예회장)은 자식들에게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때문인지 정 회장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1992년)란 자서전을 통해 자식들에 미안한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자식들에게 정 회장은 어려서부터 존경하지만 무서운 존재였다.
하지만 이 같은 정씨 가문에도 아버지에게 ‘바가지’를 씌운 당돌한 아들도 있었다. 그게 바로 정몽준 한나라당 국회의원 겸 현대중공업 최대주주다.
‘1970년대 초 정 의원은 아버지에게 한 잔 쏘겠다며 ‘왕회장’을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명동 생맥주 골목으로 모시고 갔다. 정 의원은 자리가 파할 무렵 “1차는 제가 샀으니, 2차는 아버지가 사십시오”라고 했고, 강남의 한 술집으로 아버지를 이끌었다. 그리고 정 명예회장은 그 술집에서 아들이 쌓아 놓은 외상값까지 다 치러야 했다.’
정몽준 의원은 이 일화에서 보여지듯 어려서부터 대담한 면이 있었다. 정 회장도 그런 아들을 보며 “허허” 웃으며 싫지 않았다. 자식 중 유일하게 서울대를 나오고 미국 MIT 석사, 존스홉킨스대 박사과정을 밟은 재원이라는 점도 정 회장의 아들 사랑에 한 몫 했다.
정치에 나선 것도 아버지와 닮았다. 정몽구 회장을 비롯한 정 씨 가족은 정몽준 의원의 정치 참여를 달가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아버지가 대통령 선거 낙선 후 겪은 고초를 실제 경험했기 때문이다.
지난 7.28 재보선 당시 지원유세에 나서고 있는 정몽준 한나라당 의원. 정 의원은 현대중공업의 최대주주이자 고문이기도 하다. (사진=연합) |
하지만 정 의원은 1988년 울산 동구에 출마해 당선된 뒤 지금까지 6선 의원으로써 탄탄한 정치 행보를 걷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올 6월까지는 한나라당 대표 최고위원을 지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대한축구협회 회장을 지내며 2002년 한.일 월드컵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또 이로 인해 아버지에 이어 유력한 대선 후보가 되기도 했다.
88 서울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이끌며 대권에 도전한 아버지와 비슷한 행보다.
단 노무현 후보와의 단일화 이후 선거 전일 갑작스런 공조 파기로 한동안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이 때문에 지금까지도 깔끔하다는 평과 함께 성격이 급하다는 지적이 공존하고 있다.
정몽준 의원은 가부장적인 다른 정 씨 일가와는 달리 애처가인 것으로도 유명하다. 김동조 전 외무부 장관의 2남 4녀 중 막내딸인 김영명 씨와 결혼한 그는 ‘김영명이 없으면 오늘날 정몽준도 없다’며 부인 자랑을 아끼지 않는다.
김영명 씨는 힐러리 클린턴도 졸업한 미국 정통 명문 ‘웨슬리대학’에서 국제정치학을 전공한 재원이다. 사교성도 뛰어나 1988 올림픽 유치, 1992년 정 명예회장의 대선, 2002년 월드컵 유치 때 앞뒤로 지원한 바 있다.
정몽준-김영명 부부는 슬하에 2남 2녀를 두고 있다. 장남 기선(26), 장녀 남이(25), 차녀 선이(22)와 늦둥이 막내 예선(12)이 있다.
한편 현대그룹에는 정몽준 의원을 비롯, 정치계에 진출한 사람이 적지 않다. 이들 대부분은 1992년 정 명예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하고 대선에 도전한 것을 전후로 정치판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사람이 19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 초고속 승진으로 사장까지 오른 이명박 대통령이다. 이 대통령은 1992년 정주영 회장과 함께 정계에 입문, 14.15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단 정당은 국민당이 아닌 당시 여당인 신한국당(현 한나라당)이었다.
그는 2002년 서울시장을 거쳐 2008년에 대통령에 당선됐다.
단 정몽준 의원은 현대중공업 대표이던 1984년 때부터 정계에 관심을 갖기 시작, 아버지보다 4년 빠른 1988년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부인 김영명 여사 집안 쪽으로는 홍정욱 헤럴드미디어 사장 겸 국회의원도 있다. 홍 의원은 김 여사의 둘째 언니 영숙 씨의 사위다.
(아주경제 김형욱 기자) nero@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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