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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입학사정관제와 '줄 세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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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0-08-18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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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강정숙 기자)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 시민혁명 등으로 봉건적 신분질서가 무너지고 민주주의가 확립돼가자 그동안 부모 덕에 명문대와 고위직에 무임승차했던 백인 귀족 자제들은 성적에 밀려 줄줄이 쓴잔을 마시게 됐다.

반면에  인종차별의 중심에 있던 유대인들은 대입시험에서 뛰어난 성적을 거둬 대거 명문대에 입학하게 됐다. 그러자 백인 귀족들이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해 여러 묘책을 생각해 낸다. 그 중 가장 그럴듯하게 포장된 말이 바로 '성적순으로 줄 세우지 마라'이다. 바로 입학 사정관제도다.

1910년 콜롬비아대는 성격·지도력 따위의 비교과 기준을 입학사정에 도입했다. 유대인 학생들은 학문적으로는 유능했지만 사회적 지도력 범주에는 속하지 못했기에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명문대들도 이 제도를 잇따라 받아들여 주관적 판단을 통해 학생들을 걸러낼 수 있었다.

1960년대 이후 입학사정관 제도는 지금의 모습으로 변했다. 대학 간 경쟁이 심해지면서 지적으로 우월한 학생들이 필요해진데다 민권운동의 영향으로 동등한 기회에 대한 요구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한국 대학 입시에서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3년째를 맞는 올해 2011학년 대입 전형에서 모두 118개 대학이 3만7628명을 입학사정관제를 통해 뽑을 계획이다.

학생의 잠재력, 특기 등 종합적 능력을 고려하겠다는 게 이 제도의 취지다.
그런데 여기에 들어갈 만한 글로벌 인재나 특기적성자들이 갖춰야 할 덕목은 어떤가.

한국에서 글로벌 인재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외국어 능력이 필수다. 외국어 능력 향상을 위해 해외 어학연수 한두 번쯤 가보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20세기 초 귀족 자제들의 명문대 입학 때와 달라진 것이 없다.

한 고등학교 교사는 "최근 대입에서 '성적순으로 줄 세우지 않고 선발한다'는 것이 톱스타의 명문대 무임승차 기회만 넓혀주고 있다"면서 "대다수 열심히 공부하는 평범한 학생들의 대학 입학 기회를 줄이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국사회에서 공평하게 명문대에 진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는 입학사정관제도가 뿌리내리는 데 한국인의 과잉 평등 의식도 걸림돌이다. 어느 대학은 도전 정신이 뛰어난 학생, 어떤 대학들은 지적인 창의력을 본다. 이 모든 판단 기준은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걸음마 단계인 한국의 입학사정관제도가 '성적순으로 줄 세우지 마라'란 말이 무색할 정도로 대학이 입맛에 맞는 학생을 골라 뽑을 거라며 대부분의 학부모는 거부감을 갖고 있다. 국민들의 신뢰가 정착될 때가 비로소 입학사정관 전형이 확대될 시기가 아닐까.

shu@aj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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