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재정부, 퇴직연금 세제 손질 '기싸움'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퇴직급여 제도에 대한 세제 개편 방안을 놓고 금융당국과 기획재정부가 갈등 양상을 보이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퇴직연금의 조기 정착을 위해 기존 퇴직보험과 퇴직신탁에 적용되는 세제 혜택을 폐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재정부가 강력히 반대하고 있는 데다, 주무부처인 고용노동부도 양측의 눈치를 보며 애매한 태로로 일관하고 있어 해법을 찾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 와중에 애꿎은 기업과 근로자들만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 운용수익 손비 인정 여부가 쟁점

근로자퇴직급여보장법(근퇴법)에 따르면 퇴직보험·신탁을 퇴직급여 제도로 인정하는 것은 올해 말까지다. 내년부터는 추가 불입이 불가능해진다. 퇴직연금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해 다른 퇴직급여 시스템은 점진적으로 퇴출시키겠다는 취지다.

정부는 추가로 쌓은 퇴직급여 적립금과 이미 적립된 금액을 활용한 운용수익에 대해 연말 결산 때 세금을 공제해주는 식으로 손비 인정을 해주고 있다.

퇴직보험·신탁에 대한 추가 불입이 금지되면 손비 인정도 받지 못한다. 문제는 이미 쌓은 적립금에서 발생하는 운용수익이다.

6월 말 현재 퇴직보험·신탁 적립금은 19조8000억원. 퇴직연금 적립금 총액(19조3185억원)을 웃도는 수치다.

금감원은 기존 적립금에서 발생하는 운용수익도 손비 인정 대상에서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퇴직보험·신탁에 제공되는 혜택을 없애 퇴직연금 전환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금감원 관계자는 "기업들이 가입한 퇴직보험과 퇴직신탁을 강제로 해약시킬 수는 없다"면서도 "추가 불입이 금지되고 운용수익에 대해서도 세제 혜택을 받지 못하면 퇴직연금으로 넘어오는 물량이 상당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100% 외부 적립을 의무화한 퇴직연금과 달리 퇴직보험·신탁은 내부 적립도 가능하다"며 "그러나 실제로 쌓았는지 확인이 어렵기 때문에 근로자들의 퇴직급여 수급권 보장을 위해 퇴직연금 제도로 일원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재정부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동부가 이미 적립된 퇴직보험·신탁을 퇴직급여로 인정하겠다는 유권해석을 내린 만큼 세제 혜택을 철회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재정부 법인세제과 관계자는 "금융당국은 퇴직연금 시장을 키우기 위해 퇴직보험·신탁에 대한 손비 인정을 무조건 없애라고만 한다"며 "노동부의 유권해석에 따라 퇴직보험·신탁 적립금에 대한 세제 혜택은 계속 유지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퇴직연금 제도가 많은 장점을 갖고 있지만 기업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며 "이런 부분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 노동부, "추가 검토 필요하다"

노동부는 퇴직보험·신탁을 추가로 쌓는 것은 금지할 방침이다. 그러나 쟁점 사항인 운용수익 처리 방식에 대해서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 임금복지과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기존 적립금은 퇴직급여 재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며 "운용수익에 대한 손비 인정을 철회하는 것도 기술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어 "좀 더 검토가 필요한 사안"이라며 "다만 기술적 어려움 때문에 (퇴직연금 활성화라는) 방향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금융권 관계자는 "내년에는 퇴직연금 시장이 50조원 이상으로 확대될 것"이라며 "기존 퇴직보험·신탁에 가입한 기업들의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손비 인정 여부에 대한 교통정리를 조속히 마무리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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