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정경진 기자) 최근 한 통일부 당국자는 이명박 정부의 통일정책 기조를 묻는 질문에 "어쨌든 통일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맞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남북통일을 목표로 대화를 모색하기보다는 너무 원칙을 강조한 탓에 양측의 관계가 파국 직전까지 치닫고 있다는 시각이 있다는 말을 건네자 나온 대답이었다.
이 당국자의 말은 남북통일은 대화만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며, 경우에 따라서는 밀고 당기는 힘겨루기도 필요하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졌다.
한 쪽에서 상대방의 말도 듣지 않고 계속 총칼로 위협하는데 아무리 평화를 외쳐봐야 당장에는 공염불이 될 것이 분명하므로 일견 맞는 말처럼 생각된다.
하지만 '웃는 얼굴에 침밷지 못한다'는 말도 있는 것처럼 세상에는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야 진심으로 대하는데도 불구하고 이유없이 총칼을 휘둘러대는 경우도 찾기 힘든 법이다.
일반적인 관계에서 상대방이 화를 내는 경우는 그들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그럴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때문에 당사자들 사이에 갈등이 생기게 되면 서로 조금씩 양보하는 협상을 거치지 않고서는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
더욱이 갈등의 골이 깊은 당사자들 간의 협상은 상대방을 믿을 수 있어야만 가능해진다. 내가 한 발짝 물러나면 상대방도 그만큼 성의를 보일 것으로 예상될 경우에만 서로를 신뢰하고 대화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천안함 사태 이후 악화일로를 치닫던 남북관계가 최근 화해 분위기로 바뀔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다.
우리 정부가 대한적십자사를 통해 수해를 입은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한 뒤에 묵묵부답했던 북한이 조선적십자회를 통해 공식적으로 남측에 지원을 요청해왔다는 것이다.
그것도 현 정부가 그동안 대북지원 품목에서 제외했던 쌀을 포함해 시멘트, 중장비 등 수해복구에 실질적으로 필요한 물품을 보내달라고 구체적으로 밝혔다고 한다.
그 동안 남북한 대결구도 속에서 비난과 침묵을 반복했던 북한이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번에는 두 손을 활짝 벌리면서 도움을 요청했다. 경제난 속에 감당하기 힘든 수해까지 입은 북한이 체면불구하고 진심으로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사정이 악화돼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이처럼 중요한 소식을 국민들에게 곧바로 전하지 않아 논란이 불거졌다. 지난 4일 북측의 통지문을 받고나서 3일 동안이나 감추고 있다가 언론에서 기사화되자 뒤늦게 관련 사실을 확인해 준 것이다.
당장 정부가 접근이 제한된 정보를 독점하면서 여론을 왜곡하려 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이례적으로 직접 나서 "통지문 내용을 검토해야 할 필요성 때문에 즉시 공개하지 못한 것일 뿐, 일부러 감춘 것은 아니다. 여론을 왜곡시키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까지 해야 했다.
통일안보 문제를 다루는 당국자들이 현실적으로 모든 사안을 투명하게 공개할 수 없는 속사정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기밀사항이라고 볼 수도 없는데다, 통지문을 받아야 할 우리측 대표인 한적에까지 비밀로 해야만 했던 분명한 이유를 대지 못하는 정부는 불신을 초래하는 데 충분한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보인다.
국민과의 신뢰조차 형성하지 못하는 정부가 서로 이념을 달리하는 북한을 대화의 장으로 끌어들이려는 노력을 진심으로 할 수 있을 것인지 걱정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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