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족 3대 이야기 소설로 쓴 남아공 작가 스테인씨
"한국전쟁이 끝난 1953년 무렵 일부 논평가들은 한국을 영원히 미국에 의존해서 살아가야 할 운명을 지닌, 무기력한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 어떤 고난에도 굴하지 않는 국민적 강인함과 노력으로 한국은 오늘의 위치를 쟁취했어요. 이것이 제가 8년 동안 한국에서 살면서 가장 인상 깊게 느낀 점입니다."
한국을 배경으로 한국인 가족 3대의 일상을 그린 남아프리카공화국 작가의 영문 소설이 출간돼 화제가 되고 있다.
2002년부터 8년째 전남 순천의 국립순천대 영어교육과 강사로 일하는 멜라니 수전 스테인(Melanie Susan Steyn.65) 씨는 최근 영문 중편소설 'Once Around the Sun(태양의 주위를 한 바퀴 돌아서)'(서울셀렉션 펴냄)을 펴냈다.
최근 프랑크푸르트도서전에서 처음 선보인 이 소설은 전남의 한 바닷가 마을을 배경으로 이창준이라는 어민 일가족이 제각각 성장의 아픔을 겪으며 일 년 동안 변화해 가는 모습을 따뜻한 시선으로 그리고 있다.
소설에는 10대 손자부터 70대 할머니까지 5명의 가족 구성원이 등장하며 한국전쟁 등 한국현대사와 불교, 꽃무늬 몸빼, 수다를 떠는 주부들의 모습 등 한국의 문화와 정서가 담겨 있다.
스테인 씨는 17일 연합뉴스와 서면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뜻에서 이번 소설을 쓰게 됐다"고 했다.
"마침 제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의 폭을 넓혀야 할 시기에 한국에 왔어요. 한국인 등장인물을 제 맘대로 설정한 것이 조금 건방지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인간의 원초적 충동과 잠재력 등이 지닌 보편성을 믿었고 그래서 이 소설 쓰기에 도전했죠."
한국 가정을 자세히 들여다볼 기회가 있었는지 묻자 스테인 씨는 학원과 대학에서 가르친 한국 학생들에게 영감을 많이 받았다면서 "한국 가정집에 직접 살아보진 않았지만, 한국 가정을 여러 번 방문하는 등 지난 8년간 한국을 직접 관찰하고 열심히 들어왔다"면서 "소설 속 등장인물 중 한 명인 70대 할머니 속에는 나 자신의 모습도 섞어 넣었다"고 대답했다.
한국의 가족 문화에 대해서는 "대부분의 한국 가정에서는 아직도 유교적 가치가 유효하다고 본다"면서 "물론 세대 간 서로 다른 삶의 경험과 기술의 발전이 서로를 분리시켜 놓는 까닭에 문제가 생기기도 하지만 한국의 전통 가족 제도는 정말 멋지다"고 평가했다.
한국전쟁 등 한국현대사의 비극을 소설의 소재로 삼은 데는 남아공의 인종차별 현실을 지켜봐 온 자신의 개인적 경험도 반영된 것이라고 고백했다.
"인종차별 시기의 남아공과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상황은 물론 완전히 다르지만 서로 비슷한 점도 있습니다.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힘에 의해 서로 헤어져야 했던 가족들이 겪는 공포, 그 뒤 덮쳐온 가난이 바로 그런 것들이죠. 저는 (넬슨) 만델라가 보여주었듯이 사랑과 용서야말로 모든 난관을 뛰어넘어 진정으로 승리하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1945년 남아공 수도 요하네스버그에서 정치가이자 외교관이었던 아버지와 여배우였던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스테인 씨는 남아공 내 인종차별의 현실을 지켜보며 자랐다. 이후 백인들만의 세계에 평온히 머무는 대신 유색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직업을 택했고 한국에 먼저 온 큰아들을 따라 한국에 오게 됐다. 큰아들은 현재 전남 나주에 있는 동신대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한국음식 중 호박죽을 제일 좋아한다는 스테인 씨는 "앞으로 2-3년 한국에 더 머물 계획"이라면서 "한국을 소재로 한 아동용 단편 소설과 영어회화 책도 쓰고 싶다"고 했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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