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뱃속에 있던 아이가 60년만에 아버지를 찾는다는 말에 며칠 동안 잠을 잘 수 없었어요."
2010 이산가족 방문단에 포함된 김재명(91.부산 해운대구 중동)씨는 20일 북에 두고 온 어머니와 자식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자 눈시울을 붉혔다.
1.4 후퇴 당시 함경남도 풍산군 풍산면 암흥리에서 지내던 김씨는 "'하루만 피신해 있다가 집으로 오겠다'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섰는데 그것이 생이별이 될 줄 꿈에도 몰랐다."고 고개를 숙였다.
당시 김씨의 집에는 어머니와 여동생 2명, 임신 중인 아내, 2남1녀가 있었다.
뒤늦게 전쟁 상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는 흥남부두에서 겨우 배를 타고 거제도 피난민 수용소에 간 뒤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부산으로 옮겼다.
노동일과 옷장사, 식당 등을 하면서 겨우 자리를 잡은 김씨는 북의 가족을 찾기 위해 백방으로 수소문했으나 허사였다.
부산에서 재혼해 아들 2명에 손자, 손녀까지 둔 김씨는 어머니가 자신의 생일인 8월8일이면 감자떡을 만들어 자식들에게 먹였건 게 가장 기억난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적십자로부터 다른 가족들은 모두 사망했거나 확인 불가능하고 딸과 전쟁 중에 태어난 아들만 생존해 있다는 통보를 받았다.
다음 달 3일부터 5일까지 금강산 이산가족면회소와 금강산 호텔에서 진행하는 이산가족 상봉행사에 참가하는 김씨는 "딸과 아들을 만나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어머니는 언제 돌아가셨는지, 물어볼 것이 너무 많다."라며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