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인문자 대표기자) 동아시아가 이상하다. 한반도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일본, 러시아가 각축했던 100년 전인 20세기 초반처럼 동아시아가 또 다시 군사와 외교 분야에서 재격돌 조짐을 보이고 있다.
여기다 영국과 독일, 프랑스도 경제적 득실에 따라 중국 편과 미국 편을 오가는 오락가락 행보를 보이면서 황해 경제권이 세계 외교전쟁의 초대립각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라 세계 10대 국가 진입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세운 한국 정부와 국민으로서는 현재의 군사ㆍ외교 분쟁 조짐에 창조적 실리외교 전략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어가고 있다.
동아시아 긴장 국면은 역대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28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 서해에서 실시되는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에는 사상 최초로 미국의 고성능 지상 감시 정찰기인 ‘조인트 스타스’(J-STARS)와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리는 미국 핵추진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호가 각각 그 위용을 드러냈다.
연평도 포격 도발과 조지 워싱턴호의 등장으로 화들짝 놀란 중국은 지난 27일 이례적으로 다이빙궈(戴秉國)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을 한국에 보냈다. 28일 이명박 대통령을 면담한 다이빙궈 국무위원은 후진타오(胡錦濤) 중국 국가주석의 한반도 긴장완화 의지를 전달했다.
양제츠 외교부장은 지난 26일 지재룡 주중 북한 대사를 면담하고 김성환 외교장관,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과 전화회담을 갖고 냉정과 자제를 촉구하기도 했다.
일본 정부도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에 반발한 북한의 재도발에 대비해 비상경계태세에 들어갔다. 육ㆍ해ㆍ공 자위대는 24시간 정보분석체제로 돌입했다.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모든 각료들에게 27일부터 한ㆍ미 연합군사훈련이 끝나는 다음달 1일까지 원칙적으로 수도인 도쿄에서 비상대기토록 했다.
러시아 역시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을 즉각 비난하면서 사태추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러시아군은 이미 블라디보스토크에 태평양 함대를 대기시켜 놓고 있다. 미국과 일본은 중국에 전방위 외교 압박을 가하고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지난 24일 “중국이 북한에 대해 분명한 태도로 임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간 총리 역시 “북한에 대한 중국의 영향력이 큰 만큼 북한에 영향을 줄 수 있도록 중국이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촉구하고 나서자 중국이 부랴부랴 중재외교에 나서고 있다.
‘천안함 사태→우라늄 농축 위협→연평도 포격 도발→한ㆍ미 연합군사훈련→북한의 즉각 대응 예고’라는 악순환이 이어지면서 동아시아의 안보불안이 증폭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움직임은 천안함 사태 때와는 달리 긴박하다. 중국 정부의 중재외교 전략은 내년 1월 하순으로 예정된 후 주석의 방미를 앞둔 포석이라는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나아가 천안함 사태에 따른 동북아 갈등과 남중국해 영토분쟁을 분석해 볼 때, 미국과의 긴장 고조가 중국에 실익이 없다는 현실적인 심산도 작용했으리라는 분석이다.
지난 6월 이후 남중국해 영토분쟁에 대한 미국의 개입을 놓고 미ㆍ중 양국은 한 치의 양보 없는 대립각을 세웠으나, 미국이 베트남과 사상 처음으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 데 이어 핵 협력 의지까지 내비치자 중국이 먼저 꼬리를 내리고 미국에 화해를 요청하기도 했다.
사실 중국은 동아시아 영토분쟁의 중심에 서 있다. 중국은 일본과 댜오위다오(釣魚島ㆍ일본명 센카쿠(尖閣) 열도) 갈등을 겪고 있으며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과는 남중국해 분쟁을 치르는 중이다. 여기다 일본과 러시아 사이의 쿠릴열도(일본의 북방영토) 문제에까지 가세하면서 동아시아는 군사ㆍ외교 갈등은 물론 영토분쟁까지 잠복해 있는 형국이다.
영토 외교 분쟁은 역사논쟁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는 태평양전쟁의 가해자로 일본을 몰아세우고 있다. 태평양전쟁의 승전국인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지분을 앞세워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하는 전술을 구사하고 있다.
한국 역시 독도를 둘러싸고 일본과 해묵은 역사논쟁을 벌이고 있다. 결국 동아시아의 영토분쟁 역시 미국과 중국이 주도하리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나아가 미국과 유럽의 금융위기로 세계 경제의 에너지가 아시아로 이동하는 와중에 터지고 있는 동아시아의 군사-외교-영토-역사 갈등은 유럽연합(EU)의 대응판인 아시아연합(AU)의 태동을 가로막는 새 변수로 떠오를 전망이다.
동아시아의 갈등 국면은 정확하게 100년 전의 동아시아 역사전쟁을 닮아갈 조짐이다. 베이징올림픽과 상하이엑스포를 통해 ‘대국굴기’(大國堀起ㆍ큰 나라로 우뚝 섬)를 선언한 중국이 자칫 자만과 오만에 빠질 경우, 세계 주요 국가들이 중국에 등을 돌리는 형세도 조성될 수 있다.
100년 전 청나라가 세계열강의 각축과 견제 속에서 쇠락한 것처럼, 중국과 황해 경제권의 주축을 형성하고 있는 한반도 역시 또 다시 100년 전의 격랑으로 되돌아 갈 수 있다는 우려까지 제기되고 있다.
국제외교 전문가들은 “7세기의 당(唐)과 14세기의 명(明)에 이어 700년 만에 한족 중심의 세계 대국을 선언한 중화인민공화국이 자칫 역사인식의 실패로 오만에 빠질 경우, 거대한 늪에 빠져 들어가는 거대한 코끼리의 신세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이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전략적 처신과 위안화 보따리로 독일과 프랑스까지 미국과 거리를 두게 했던 중국으로서는 ‘도광양회’(韜光養晦)의 전략을 폐기하고 기세등등할 만하다.
중국은 이제 넘쳐나는 외환보유액으로 미국과 일본의 국채 매도ㆍ매수를 조절할 능력까지 갖췄다. 에어버스의 대량구입으로 달라이라마 문제로 갈등했던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을 굴복시켰고, 희토류 카드로 일본 정부를 항복시킨 전례도 있다.
국제외교 전문가들은 이어 조지 부시 전 미 대통령의 오만한 세계 외교 전략이 미국의 고립과 세계인의 미움을 자초한 것처럼 중국 역시 자칫 대의명분과 역사인식을 소홀히 한 채 그 전철을 밟을 경우 세계인들로부터 ‘왕따’를 당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고 지적한다. 중국 정부와 국민들이 천안문에 내걸린 “중화인민공화국 만세, 세계 인민 대단결 만세”의 의미를 곰곰 되새겨야 할 시점인 듯하다.
유장희 국민회의자문회의 부의장은 “한국과 중국 간의 외교 분쟁의 조짐을 냉철하게 분석, 새로운 국가 외교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세계 환율전쟁과 동아시아 군사-외교-영토-역사 분쟁이 격렬해지면서 한국 외교 전략의 유일무이(唯一無二)한 대안으로 창조적 실리외교를 꼽는 전문가들이 늘고 있다.
김영원 주 네덜란드 대사는 “독일과 프랑스, 스페인의 침공 속에서 경제 강국과 외교 강국을 구가하고 있는 네덜란드가 우리의 외교전략 모델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고려시대 서희 장군의 창조적 실용외교야 말로 21세기 한국이 지속 번영할 수 있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냉전도 열전도 아닌 고도의 심리전과 의연한 심산술이 생명인 21세기 군사ㆍ외교전쟁. 한국 정부와 국민은 세계 10대 강국으로의 도약이라는 국가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동아시아 군사-외교-영토-역사 분쟁에 냉철하고도 섬세하게 대응하는 고도의 창조적 실리외교를 구사해야 한다는게 국제 외교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100년 전의 대한제국과 국민들처럼 힘없고 우직하고 원칙 없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돼서는 더더욱 안 될 것이다.
인문자(人文自) 대표기자 ceoky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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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신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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