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의 적국이 시간이 흘러 동맹국이 되고, 오늘의 우방은 미래의 어느날 흉포한 침략자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은 인간의 역사가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엄연한 진실이다. 마치 변곡점에 도달한 그래프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듯이 끊임없는 배신과 타협이 반복되는 게 국제관계의 이치다.
60년 전 발발한 한국전쟁에서 각각 남ㆍ북한의 동맹국으로 참전해 총부리를 겨눴던 중국과 미국은 여전히 한반도 문제를 놓고 갈등을 빚는 상대방이지만 그 속내는 완전히 달라졌다.
최근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미·중 정상회담은 두 나라의 관계가 큰 변화를 맞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미 이념적 대결은 먼 옛날 일이 된 두 나라가 동맹국과의 '의리'를 지키기보다는 '실리'를 챙기기 위한 타협을 강조하는 쪽으로 무게가 실리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못하는 것은 남북한 뿐이다. 수십년 반목의 세월도 모자란듯 여전히 서로 으르렁대며 남 좋은 일만 시키고 있다. 미ㆍ중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한반도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남북대화를 통한 관계개선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또한 북한의 우라늄농축 프로그램에 대한 양국의 우려도 제기됐다.
하지만 '남북대화 우선론'은 이미 한반도 정세를 둘러싼 관련국들이 합의한 사항이므로 새로운 성과라고 보기 힘들다. 오히려 6자회담을 촉진하기 위한 중국의 의도가 깔려있다는 시각도 있다.
우라늄 농축에 대한 우려 표명 역시 북한의 핵 위협을 해소하는 게 당면 현안인 오바마 대통령의 의중이 관철됐다는 점에서 가장 큰 수혜자는 결국 미국이다.
반면 미ㆍ중 양국은 세계 유일의 분단국으로 남아있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 방안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 듯하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남북이 한반도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주변국들의 이해관계에 크게 휘둘리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은 중국의 우회 지원을 받으면서 미국과의 담판을 원하고 있고, 우리 정부는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북한이 먼저 머리를 숙여야만 대화에 나설 수 있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따라서 내달 중순쯤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는 남북 대령급 군사회담이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비록 미ㆍ중 정상회담 직후 등 떠밀리듯 이뤄지는 듯한 모양새이지만, 남북 당국이 한반도 현안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번 군사회담이 본회담에 이어 양측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고 하루 속히 남북의 평화통일을 앞당기려면 북측의 진정성 있는 태도변화와 남측의 넓은 아량이 함께 어우러져야 할 것이다.
영원한 우방도, 영원한 적국도 없는 엄혹한 세상에서 결국 마지막까지 같은 편이어야 하는 상대는 한민족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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