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명 13릉 넘어 옌칭현쪽으로 방향을 잡아 산을 오르면 창청의 허물어진 모습이 도처에 눈에 띈다.
당나귀로 밭을 가는 농부. 작은 실개천과 물레방아. 마을을 둘러싼 산등성의 허물어져 내린 쇠락한 창청(長城•만리장성). 장성의 폐석조각을 물들이는 저녁 노을. 산 북숭아 꽃이 피기라도 하면 이곳을 무릉도원이라해도 과장된 얘기가 아닐듯 싶다.
그곳은 풍수 좋다는 베이징 명 13릉 너머의 작은 산골 동네. 만리장성에서 갈라져 나온 능선들이 품고 있는 아늑하고 한적한 곳이다. 도심에서 북서쪽 바다링(八達嶺) 고속도로를 40분쯤 달리다 13C 출구에서 빠지면 이자성(李自成) 동상의 원형 톨게이트가 나온다. 반의 반 바퀴만 돌아 오른쪽, 13릉 방향으로 향하다 '옌칭(延慶)현 39㎞ 표지판'에서 우회전해 산길로 20분정도 가면 이곳에 닿는다.
번잡한 도심에서 1시간 30분 정도, 명 13릉에서는 30분도 채 안되는 거리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베이징의 건설사 회사원인 친구 지(紀)씨는 휴일이면 이곳 자신의 별장으로 자주 나를 초대해 줬다.
봄에는 소나 당나귀로 밭을 갈때 뿜어져 나오는 흙 냄새와 복숭아 살구꽃 향기로 신선같은 흥취에 빠져들 수가 있고, 여름이면 신록의 싱그러움과 맑은 개울물로 더할나위 없는 청량감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지 씨를 처음 만났던 2000년대 중반께 그는 회사에 휴직계를 내고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었다. MBA와 어학공부를 해서 몸값을 높인뒤 그는 전 직장보다 월급이 두배나 많은 건축 감리회사로 옮겼다. 그 무렵만해도 아무도 주목하지 않던 이곳에 그는 4만위안을 투자해 아담한 별장을 지었다.
“지금은 자가용때문에 외부인들의 발길이 늘어났지만 주말이면 저는 여전히 이곳에서 개울물과 산새 소리를 들으며 잠을 깨지요. 교통도 베이징 중관촌 집에서 차로 1시간여만에 도착할수 있을 만큼 편하지다. 머리 식히고 편안하게 쉬기에 안성맞춤인 곳입니다.”
베이징 호구에 대학을 졸업하고, 번듯한 직장을 가진 지씨는 도시의 전형적인 중산 계층이다. 훤칠한 키에 단아한 얼굴, 정확한 보통화(현대 베이징 말) 발음. 뭐 하나 흠잡을데 없는 한족 출신의 기품있는 라오 베이징(老北京 베이징 양반)이다.
지씨는 30대 중반으로 아직 젊지만 경제적으로 꾀나 풍요한 삶을 누리고 있다. 월급외에도 주식과 부동산이 그의 자산을 자꾸 불려주고 있다. 그는 한국을 비롯한 외부 세계에 관심이 많다. 남북 분단, 한국전쟁과 미국 개입, 한국의 해군력과 일본의 이지스함. 이런것들이 그의 주된 관심사다.
언젠가 남북 분단에 관해 얘기를 나누다가 그는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은 말을 털어놨다. 그전에도 6.25 전쟁 얘기를 몇번 했었지만 이전에는 한번도 꺼낸적이 없는 얘기였다.
"한국전쟁 때 우리 할아버지도 참전했었어요.”
평소같지 않게 그의 목소리는 아주 낮고 은밀했다.
이어 그는 “최 선생 부친도 참전했다면 우리는 서로 총을 겨눴던 사람들의 후손이겠지요? ” 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 말은 왠지 과거 지사는 잊자는 제스츄어처럼 다가왔다. 그동안 입속에서만 맴돌았던 얘기를 털어놨기 때문일까. 지씨는 이전에 비해 훨씬 편하고 홀가분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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