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헌규의 중국이야기 10-4> '공산당의 종교' 트로이의 목마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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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2-24 1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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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 ‘아편’도 ‘복음’도 아닌 중국 종교

오랫동안 중국의 종교인들은 색안경 넘어 감시의 대상일뿐이었다. ‘종교쟁이’는 아편쟁이 처럼 백해무익한 암적인 존재로 여겨졌다. 하지만 시대변화와 함께 공산당의 종교정책에도 조용한 변화가 나타났다. 공산당은 특히 종교계와의 해묵은 대립구조를 허세(和諧.조화) 관계로 개선하려는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물론 중국 공산당의 이런 움직임을 서방사회와 같은 종교의 자유를 모색하는 과정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과거 ‘아편’으로 규정했던 종교를 공생 공존의 파트너로 대하는 태도는 꽤 의미심장한 변화임이 분명하다. 지난 2008년 베이징 올림픽때에는 선수촌 일대에 불교와 기독교, 이슬람 예배당을 설치하는 유연성도 보였다.

국회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는 일종의 비례대표제 같은 형태로, 목사 출신 전인대 대표도 탄생했다.

“베이징 인민대회당 돌계단에 서기까지 꼬박 30년이 걸렸습니다.”

지난 2008년 3월 톈안먼(天安門) 광장과 접해있는 인민대회당 동문 계단.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11기 전인대 정부보고 후 계단을 내려오던 한 전인대 대표가 털어놓은 얘기다.

주인공은 헤이룽장(黑龍江)성 출신의 이미란(李美蘭) 대표로, 현직 목사였다. 이 대표는 목사출신 전인대 대표’가 인민대회당 문턱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나는 그녀와 대회당 계단에 서서 중국 종교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이 대표는 ”30년전 개혁•개방후에도 교인들은 요시찰 대상이었다”며 “당당히 정치 무대에 서게된 게 감개무량하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녀는 “종교인은 인민의 공적(公敵)으로서, 순교할 각오가 없으면 감히 교인이라는 신분을 밝힐 수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전인대 대표로 정치무대에 오를 것을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느냐”고 말했다.

내친김에 나는 목사겸 전인대 대표이며 사영기업가이기도 한 복잡한 신분의 그녀에게 중국 종교문제를 집중적으로 캐물었다.

“일반 중국인들의 신앙생활은 어떠한가요?”

“헌법상 종교와 신앙의 자유는 서방국가와 별반 다를 게 없죠”

“공산당 이데올로기와 교회의 교리 사이에 존재하는 갈등적 요인은 어떻게 극복합니까?”

“기독교인 역시 공인으로서 책임을 다하고 경제 사회발전이라는 지향점을 공유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없다고 봐요. 중국 ‘종교의 자유’를 너무 색안경을 쓰고 보는 관점이야 말로 편견이 아닐까요”

“훗날 중국 공산당에 있어 종교가 트로이의 목마와 같은 화근이 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드는데요”

“그전에 목마가 중국이라는 거대한 용광로 속에 녹아버리고 말걸요. 5천년 중국 역사는 외래 민족과 그들의 문화 종교를 포용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아니었나요?”

그녀는 목사라기 보다는 공산당의 종교정책 대변인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동북 신학대를 나와 2000년대초 한국 장로교 신학교와 미국에서 목회자 코스를 밟은 어엿한 목사였다.

중국에 돌아와 기장 목사로서 신자 1만명의 큰 교회를 세웠다. 이후 하얼빈(哈爾賓)에 따로 임마뉴엘 교회를 설립, 중국인들을 상대로 목회 활동을 하고 있다. 어쩌면 그녀는 공산당의 선전꾼인 동시에 하나님의 충직한 목회자라는 두얼굴의 야누스인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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