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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헌규의 중국이야기 13-2> 조선족 출신에 중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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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4-08 1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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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국인 신분 아니면 아무것도 할 수 없어…조선족은 부수적

가깝게 지내는 사람 중에 동갑나기 조선족 중국인 친구가 한 명 있다. 나는 헤이룽장(黑龍江)성 무단장(牧丹江)이 고향인 그와 국적 민족 등을 화제로 많은 대화를 나눴다.

“내가 중국인이라는 것이 중요하지. 조선족 출신이라는 것은 부수적인 것이다.” 살아가는데 있어 조선족은 아니어도 상관없지만 중국인이라는 신분이 아니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족 출신에 중국인 신분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한 친구의 확고한 지론이다. “어쩌면 민족은 이상에 해당하고 국적은 현실과 같은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민족이란 혈통 즉 유전학적으로 강한 공통점을 지니면서 언어와 문화 역사상으로 동질적이며 공동체적 기반을 공유하고, 이 과정에서 고유한 정체성을 갖게 된 집단이다. 우리는 오랫동안 스스로를 단일 민족이라고 일컬어 왔지만 세월의 변화속에서 이 말은 점점 생경하고 무의미한 말이 돼가고 있다.

중국에서 만난 사람중에 태생적으로 너무나 복잡한 요소를 갖추고 있어 어느 민족인지를 규정하기 쉽지 않은 젊은 여성이 한 명 있다. 두(杜)씨 성을 가진 그녀는 베이징의 한 부동산 중개업소 직원이다. 1987년생인 그녀는 한국의 충청도 청주가 고향이다. 화교 조부와 6.25전쟁때 평양에서 피난 온 조모, 이들 에게서 태어난 부친(화교 신분)과 충청도 출신의 모친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태생적 비밀을 지금까지 한번도 남에게 얘기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녀는 어머니에게서 한국말을 배웠다. 그래서 그녀의 한국말은 같은 또래의 여느 조선족 동포들이 하는 한국어 보다 훨씬 서울말에 가깝다. 7세 무렵 온 가족이 한국을 떠나 중국 동북지역 훈춘(琿春)으로 이주함에 따라 그녀는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국적을 갖게 됐다.

당시만 해도 한국을 떠나는 화교들이 대부분 대만 국적을 취득했음을 감안하면 조부가 중국으로, 그것도 훈춘이라는 외지고 가난한 지역으로 이주한 것은 아주 특이하고 이례적인 일이었다.

화교 조부와 평양출신 조모, 다시 화교 부친에 남한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그녀에게서 민족의 원형질을 찾아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 같다. 특히 그녀가 태어나서 생활해온 인문 환경적 요소를 감안한다며 민족적 정체성을 규정짖기가 간단한 문제가 아닐 것이다. 아마 그녀는 최근 우리사회가 맞고 있는‘다문화 가정’이라는 사회현상의 또다른 지향점을 예시해주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평소 그녀는 스스로를 조선족으로 인식하고 있는 눈치였다. 그 연유를 물었더니 대답이 재미있었다. 중국말과 한국말 둘 다 할 수 있고, 조선족 동포가 많은 훈춘에서 조선족들과 어울려 생활하다보니 그렇게 생각하게 됐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것도 그녀를 조선족으로 규정할 마땅한 이유가 되지 못했다.

단지 이 아가씨는 화교(부친)와 한국인(모친) 사이에서 태어나 집안 어른들의 결정에 따라 중국 국적을 얻게 된 경우다. 중국에서 오래 거주한 한국인들을 일컬어 반 농담으로 ‘신 조선족’이라고 부르는데 그녀는 태생적으로 이들 신 조선족과도 거리가 먼 신분이다.

미스 두네 집안이 이주해온 동북지역은 영토와 민족구성에 있어 아주 복잡한 역사성을 지닌 곳이다. 과도기가 지나 국경이 정비되면서 이 지역은 중화인민공화국에 귀속됐고 이곳에 살던 한인들은 ‘조선족 중국인’이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형성하며 살아가게 됐다.


(아주경제 최헌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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