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CB는 7일(현지시간) 열린 통화정책회의에서 금융위기 이후 1%로 묶어뒀던 기준금리를 1.25%로 0.25%포인트 상향조정했다. ECB가 금리를 인상한 것은 23개월만에 처음이다.
장 클로드 트리셰 ECB 총재는 이날 회견에서 인플레이션에 대한 우려를 재확인하는 등 추가 금리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시장에서는 ECB의 금리인상 결정이 국제 금융시장에 미치게 될 영향을 분석하는 한편, ECB의 긴축선언에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Fed)가 어떻게 반응할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하지만 연준은 지난달 열린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통해 인플레 압력이 미미하고, 고용·주택시장의 침체가 계속되고 있다며 통화부양기조를 고수하겠다는 방침을 재확인했다.
연준 내부에서도 긴축시기에 대한 콘센서스가 도출되지 않고 있어 연준이 긴축행렬에 동참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유력 이코노미스트들은 물가상승률과 실업률이 연준 목표치에 근접하게 될 때라야 미국이 출구전략 시행에 나설 것이라며 적어도 올해 연말까지는 제로(0)금리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점치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이날 연준이 ECB를 따라 긴축행보에 나설 수 없는 이유 7가지를 제시했다.
◇금융위기 충격…美>유로존
로이터는 우선 미국이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보다 2008년 불거진 금융위기로 받은 충격이 더 크다고 지적했다. 금융위기 이후 경기침체가 정점에 달했던 2009년 하반기까지 미국의 실업률은 두 배 이상 오른 10.1%에 달했지만 같은 기간 유로존 실업률은 40% 상승하는 데 그쳤다.
미국의 지난달 실업률은 8.8%로 2년래 최저치를 기록했지만 여전히 연준 목표치(5~6%)를 크게 웃돌고 있다.
◇인플레 대응능력…연준>ECB
인플레 대응능력의 차이도 연준과 ECB의 행보를 엇갈리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로이터는 분석했다. 유로화 도입과 함께 출범한지 불과 10년밖에 안 된 ECB보다는 연준의 인플레 대응능력에 대한 신뢰도가 높은 만큼 연준이 더 신중하게 움직일 여지가 크다는 설명이다.
일례로 ECB는 2008년 국제유가가 배럴당 150 달러 수준으로 치솟자 지금과 비슷한 행보를 취한 바 있다. 같은해 6~7월 예상을 뒤엎고 금리인상을 단행한 것이다. 하지만 이 조치는 상품랠리를 부추겼고, 같은해 9월 발생한 리먼사태로 ECB는 통화정책 기조를 급선회했다.
◇연준 목표는 물가·고용안정
로이터는 연준과 ECB의 정책목표가 다르다는 데도 주목했다. ECB는 역내의 물가안정에만 매진하면 되지만 연준은 물가와 실업률을 동시에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미국의 소비자물가상승률은 지난 2월 2.1%로 잠정적 정책목표치인 1.6%를 밑돌고 있다. 반면 유로존은 2.6%로 상대적으로 높은 편이다.
더욱이 전문가들은 미국에서 완전고용이 이뤄지기까지는 적어도 3년간 강력한 고용창출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아울러 연준은 국제유가 급등세가 미국 경제의 주요 동력인 소비지출의 감소 원인으로 작용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연준은 ‘근원인플레’ 초점
연준은 모든 가격이 반영된 헤드라인인플레이션에 집중하는 ECB와 달리 식품과 에너지 가격 등이 제외된 근원인플레이션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최근 물가를 자극하고 있는 것이 중동지역 정세 불안에 따른 고유가와 지난해부터 이어진 식품가격 급등세라는 점에서 연준의 대응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다.
미국의 2월 근원 물가상승률은 0.9%에 그쳤는데 이는 지난해 12월 사상 최저치인 0.7%와 큰 차이가 없다.
아울러 연준은 ECB와 달리 구체적인 물가상승률 목표치를 공식화하지 않고 있다.
◇美 더딘 임금상승률…인플레 압력↓
로이터는 미국의 더딘 임금상승률도 연준의 긴축행보를 늦추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노동조합의 입김이 센 유럽에서는 임금 인상 속도가 빠른 것이 물가에 부담을 주고 있지만, 미국은 그렇지 않다는 설명이다.
지난해 4분기 유로존의 임금상승률은 1.4%를 기록했지만, 미국의 평균 시급은 지난 3월 갈지자 행보를 하는 등 최근 5개월새 4개월간 변동이 없었다.
이밖에 로이터는 유럽인과 미국인의 서로 다른 역사 경험도 연준과 ECB의 엇갈린 행보를 낳고 있다고 분석했다. 유럽인들은 1930년대 발생한 초인플레이션(하이퍼인플레이션)이 몰고온 파시즘과 제2차대전의 악몽을 공유하고 있는데 반해 미국인들은 대공황이라는 경기침체의 충격을 잊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당시 미국의 실업률은 20%까지 치솟았다.
또 기준금리 인상이 최근 인플레를 주도하고 있는 국제유가 급등세를 저지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도 연준의 결정을 어렵게 하는 요인이라고 로이터는 덧붙였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