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베이징대 교수였던 왕씨와 그의 부인인 베이징대학 교수 장씨는 10여년전 홀연히 잠적했다. 이들 부부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종적을 감추자 사람들 사이에서는 외국으로 나갔다거나 심지어 자살했다는 둥 갖가지 억측이 난무했다.
하지만 왕씨 부부는 속세의 삶에 염증을 느껴 도원경을 찾아 깊은 산속에 귀의한 것이었다.
베이징대학 국제정치학과 79학번이었던 왕씨는 최근 동기생으로서 신화사 기자가 된 당씨와 10여년만에 연락을 해서 만났다. 왕씨는 학부졸업후 83년 법학과 석사과정에 들어가 교수로 재직하게 됐으나 스스로 속세의 모든 영화를 포기했다.
문득 과거 동창앞에 나타난 왕씨는 기자인 당씨에게 전쟁과 같은 취재활동으로 고생이 많다고 위로한 뒤 자신이 직접 기르고 재배한 웰빙 식품이라며 오리알과 양고기 팥과 쌀 등 농산품을 선물로 건넸다.
왕씨는 교수로서 일하는 것보다 지행합일을 통해 실천적 인생을 살기를 원했다. 그는 명성과 재부를 모두 거머질수 있는 베이징대 교수자리를 버리고 같은 베이징대 교수이던 장씨와 갑자기 산속의 은거생활을 택해 산속의 황무지 2500무를 불하받아 농사를 짖게됐다.
이들 부부가 세상에서 돈을 주고 구입하는 것은 소금 정도이며 한달에 한번 또는 일년에 한번 정도만 각각 도시를 찾을 정도로 속세와 철저히 격리된 생활을 하고 있다.
이들 베이징대 교수 출신 부부는 아이에게 속세의 인간삶에 조금도 오염이 안된 삶을 살게 해주기 위해 세상과 단절하고 살아갈려고 했다. 하지만 최근들어서는 세상과 격리된 생활을 하는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기위해 도시 사회로의 회귀를 고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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