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과 노무현 정부의 ‘포용정책’이 남북관계 발전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북한의 전술에 따라 이리저리 휘둘리며 빼앗기기만 했다는 비판에 근거하고 있다.
현 정부는 이 같은 ‘과거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우리 쪽에서 먼저 손을 내밀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아쉬운 쪽은 북한이므로 그들이 먼저 고개를 숙이지 않으면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 당국 간 대화조차 하지 않겠다는 입장인 듯하다.
우리나라 외교안보정책의 또 다른 특징 중 하나는 미국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는 점이다. 한국전쟁 이후 미국과 60년 동맹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은 때론 국익에 손해가 있더라도 한·미동맹을 지키는 걸 우선으로 하는 정책을 펴오곤 했다. 미국은 자국의 손해가 없는 일이라면 언제든 한국 정부를 지지해왔다.
그런데 최근 한국 정부의 대북 원칙과 한·미동맹 사이에 미묘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마크 토너 미 국무부 부대변인은 지난 18일(현지시간) 정례 브리핑에서 “천안함 사건에 대해 북한이 사과해야 한다고 말한 적 없다”고 밝혔다.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포격에 대한 북한의 사과가 6자회담 재개의 전제조건이냐’는 질문에 미 정부가 두 사안을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방침을 처음 내비친 것이다.
눈길을 끄는 건 우리 정부의 반응이다. 외교·안보 당국자들이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미국 입장에 동조의사를 밝혔다.
조병제 외교통상부 대변인은 19일 6자 회담의 조건으로 ‘북한의 진정성 있는 태도’를 강조했지만 ‘북한의 사과’를 언급하진 않았다. 원세훈 국정원장 역시 이날 국회 정보위원회에 출석해 북한의 공식적 사과 대신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 당국자들의 이 같은 반응은 지난 1일 이 대통령이 특별회견에서 “북한이 저질러놓은 일에 대해 사과해야 6자회담도 할 수 있다”고 밝힌 것과 분명한 온도차가 있다. 대통령 회견이 있은 지 20일도 안 돼 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이 바뀐 셈이다.
눈에 띄는 건 미국이 ‘6자회담과 천안함 사건’ 분리대응 방침을 밝히기 직전 클린턴 장관이 방한해 김성환 외교부 장관과 회담하고 이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점이다. 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에 변화가 생긴 것이라면 그 원인은 미국 때문이란 추측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내내 강조해온 대북정책의 ‘원칙’도 미국의 영향력 아래에선 하루아침에 없던 일이 되는 분위기다. 결국 스스로 끝까지 지켜내지도 못할 그 ‘원칙’ 때문에 우리가 얻은 건 뭘까. 그동안의 남북대립 속에서 잃은 것들을 되새길수록 대답을 찾기가 더 힘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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