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경기와 주택공급 활성화를 위한 5.1 대책의 가장 큰 수혜 대상이라는 재건축 아파트를 놓고 매도자와 수요자 사이에서 심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이번 대책을 호재로 인식한 몇몇 매도자들이 호가를 올리는 등 기대감에 잔뜩 부푼 반면 향후 집값 상승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수요자들은 일부 유망 단지의 저가 매물에만 관심을 보일 뿐 전반적으로 냉정한 분위기다.
일반 아파트 등 재고 주택의 경우에는 재건축 단지에 비해 더욱 반응이 냉랭해 당분간 정부 대책의 '약발'이 먹히기보다는 부동산 거래시장의 약세가 지속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대책 발표 일주일째인 8일 부동산 전문가들은 "당장은 수요가 움직이기 어려울 것"이라며 정책이 효과를 나타내는 데 시간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강남권 재건축 호가↑…수요층은 '냉정' = 5.1대책의 핵심 방안인 양도세 비과세 요건의 완화로 투자·투기 수요가 많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시장이 가장 먼저 반응을 보이고 있다.
종전 '3년 보유 2년 거주'의 양도세 비과세 요건에서 거주 요건이 사라짐으로써 실거주 목적이 아닌 투자 목적 수요자를 유인할 수 있게 됐고 처분을 원하는 현 보유자들도 운신의 폭이 넓어졌기 때문이다.
지은 지 오래돼 낡고 거주 환경이 불편한 재건축 단지, 그중에서도 재건축을 통한 가격 상승 기대감이 비교적 큰 강남권 아파트는 실수요자보다 투자자들을 유인하는 대표적인 부동산 상품이다.
이에 강남과 송파, 강동 일대의 재건축 추진 아파트 단지에서는 최근 경기 침체로 내렸던 매도 호가를 다시 올리는 소유자들이 늘고, 급매물을 중심으로 조금씩 거래 건수도 증가하고 있다.
재건축 사업이 추진되는 강동구 둔촌동 D부동산 관계자는 "그저께 세 건의 거래가 성사됐고 어제도 한 건이 거래됐다. 급매성 매물은 거의 빠져나가는 등 분위기가 좀 살아났다"라고 전했다.
매도자가 급하게 내놓은 아파트들이라 다소 낮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리 호가를 낮춰도 거래가 어려웠던 지난달에 비하면 다소 사정이 나아진 셈이다.
게다가 지난 5일 9억원에 팔린 둔촌 주공 1단지 82㎡ 아파트가 하루 뒤인 6일에는 9억1천만원으로 호가가 오르는 등 상승 조짐도 조금씩 엿보인다.
대규모 재건축 단지인 송파구 잠실 주공5단지도 집주인들이 일제히 매도 호가를 올리는 추세다.
잠실동 P공인 대표는 "호가가 전 평형에서 2천만~3천만원씩 올랐고 그동안 거주요건을 채우지 못했던 소유자들의 문의 연락이 많이 오고 있다"며 "급매물들은 다 팔린 상태"라고 말했다.
이처럼 재건축 아파트 투자에 관심을 가진 수요자들이 문의에 나서기는 하지만 가격이 낮은 일부 급매물을 제외하면 거들떠보지도 않는 분위기가 우세하다.
송파구 가락시영 재건축 단지 인근의 M공인 관계자는 "아무래도 재건축 아파트에 실질적인 혜택이 가장 많이 돌아가니까 대책이 나오고 나서 하루에 8~12통 가량 문의 전화가 걸려온다"면서도 "급매물은 거래가 되지만 전반적으로 매수세가 따라붙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잠실동 P공인 측도 "매수 문의가 조금 있기는 한데 작년 말에는 크게 못 미친다. 매수자들이 관망세를 유지해 고민스럽다"며 수요자들이 매도자들의 기대에 부응하지는 않는다고 전했다.
◇부동산시장 한파 녹이기엔 역부족…"시간이 필요" = 매도자들의 기대 심리와 달리 당장 수요자들의 거래 심리가 살아나지 않는 이유는 정부 대책만으로 상황을 반전시키기에는 부동산 시장 침체의 골이 너무 깊기 때문이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매매시세는 3,4월 두 달 연속 떨어졌고, 5.1 대책이 발표된 직후인 이달 첫째주에는 서울뿐 아니라 신도시, 수도권까지 매매가격이 동반 하락했다.
앞서 3.22 대책으로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복원되고 정부가 공언했던 분양가 상한제 폐지안의 국회 통과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이번 5.1 대책이 식어가는 시장을 일으켜세우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의미다.
양도세 비과세 요건 완화의 수혜 지역인 경기 평촌의 C공인 관계자는 "대책 발표 이후에도 매매 움직임이 없다. 거주요건을 폐지한 정도로는 시장에 큰 영향이 없을 것"이라며 "금리와 DTI 규제가 수요자들에게는 훨씬 중요한 문제"라고 말했다.
게다가 정부가 아무리 '당근'을 내놓더라도 집값이 오르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점에서 수요자들이 대부분 전세나 월세에 머무르려고 하는 현상도 당장 정책의 '약발'을 희석시키는 상황이다.
실제로 부동산114가 최근 서울과 수도권 거주자 79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앞으로 6개월 안에 집을 사겠다고 한 응답자가 17.9%에 불과해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비율을 기록했다.
부동산1번지 박원갑 소장은 "이번 대책이 수요자들에게 유리한 호재인 것은 분명하다"면서도 "소비자들은 여전히 절대적인 주택 가격이 가구 소득에 비해 비싸다고 보고 있다. 앞으로 집값이 크게 오르기 어려울 것으로 판단해 움직이지 않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소장은 그러나 "정책의 단기적인 효과는 공급보다는 수요의 변화에 의해 나타나는데 지금과 같은 침체시장에서는 정부의 경기활성화 대책이 누적돼야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며 정부가 내놓은 여러 차례의 부동산 대책들이 누적되면 장기적으로 소기의 성과를 거둘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강동구 S공인 대표도 "정부 대책도 숙성되는 기간이 필요하다"며 "초반에는 그동안 양도세 때문에 묶여있던 매물이 나오면서 일시적으로 가격이 떨어질 수 있지만 이런 것들이 정리가 되면서 서서히 불이 붙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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