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이제 막 삼십대 중반으로 접어든 톈닝(田寧) 저장판스정보기술유한공사(浙江盤石信息技術有限公司) 회장은 저장대학 최초의 학생 CEO이자 가장 성공한 벤처사업가로 유명하다.
1977년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톈닝은 재학시절부터 리더십이 강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그는 다양한 교내 동아리를 조직하기도 했고 당시 유행하던 워크맨, 이어폰 등을 팔며 ‘짭짤한’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1999년은 전세계적인 인터넷 붐속에 여기저기서 IT벤처분야의 ‘벼락부자’가 탄생할 때였다. 바로 그때 텐닝의 머릿속에‘반짝이는’ 아이디어 하나가 떠올랐다.
당시 가오카오(高考, 대입수능)를 비롯한 공인시험을 본 수험생들은 ARS 전화를 이용해 점수 및 합격 여부를 확인했는데, 수만명의 응시자가 동시에 몰리다 보니 전화연결 또한 시험만큼이나 경쟁이 치열했다.
만약 인터넷을 통해 시간이나 지역, 응시자 수에 상관없이 간편하게 점수를 확인할 수 있다면? 해마다 각종 시험의 응시자가 수백만명에 달하는 중국에서 최소한 5위안씩만 받는다고 해도 보통 액수가 아니었다.
톈닝은 동기 두명과 공평하게 3만위안(한화 약 490만원)씩 각출하고 항저우 과학기술협회에서 1만위안을 지원 받아 총 10만위안의 종잣돈을 마련, 마침내 저장대학 판스컴퓨터네트워크기술 회사를 차린다.
그러나 수의학 전공생들에게 IT는 너무도 낯선 영역이었다. 원하던 일을 하려면 서버를 빌려야 하는데 여기에 필요한 돈만 10만위안이 훌쩍 넘었다.
보기 좋게 한방 ‘먹은’ 3사람은 결국 컴퓨터 판매로 길을 바꾸지만 ‘억’소리 나는 임대료에 다시 한번 주춤한다. 결국 그는 화려한 언변으로 상가의 관리자를 움직여 모퉁이 공간을 무료로 빌렸다.
돈이 없어 물건도 들여오지 못하던 톈닝은 옆 매장의 빈 상자를 쌓아두고 물건이 많은 척 하는 ‘꼼수’를 썼다. 그리고 얼마 후부터는 ‘조립컴퓨터 3년 무상 A/S 및 방문서비스’라는 획기적인 서비스를 내걸었다.
브랜드 컴퓨터를 사야만 누릴 수 있는 서비스에 고객들은 만족했고 반년도 안되어 톈닝은 월세 2만위안의 ‘노른자위’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다시 대형 전자 상가에 항저우 최대 컴퓨터 판매점을 내고 하루 평균 300대 판매라는 신기원을 세웠다.
2004년, 컴퓨터 판매로 ‘잘나가던’ 젊은 사장은 갑자기 중소기업의 온라인 마케팅 및 컨설팅을 해보겠다며 전자상가를 박차고 나온다.
일반 광고회사와 다를 것이 있겠냐며 그해 11월 판스정보기술회사를 차리지만 사무실을 꾸리는데만 200만위안이 들어갔고 이후 2, 3년의 적자로 1000만위안에 달하는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숱한 고생끝에 판스는 점차 회복세를 보이기 시작, 5000여개의 고정 고객사를 보유하며 중국 최대 온라인 마케팅 및 솔루션 업체 중 하나로 부상했다.
“1:1의 정확한 맞춤형 솔루션 제공으로 중소기업의 온라인 마케팅을 돕고 향후 5년내 고객사 십만개사를 돌파, 온라인 광고업계의 리더가 될 것이다”고 톈닝회장은 다음 포부를 털어놓는다.
‘신예 CEO’ 톈닝은 현재 자산 1억 5000만위안(한화 약 246억원)으로 대학생 벤처 사업가 6위에 랭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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