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여름철에는 수면 문제와 관련된 환자가 많아진다. 별다른 이유 없이 짜증이 늘고 일의 능률이 떨어지거나 집중하기가 어렵다고 호소하는 사람들에게 우선 살펴봐야 할 것도 바로 잠의 문제이다.
불면증이 여름에 많이 발생하는 이유로는 우선 계절적 특성을 들 수 있다. 길어진 일조시간 때문에 수면 시작 시간이 늦어질 수 있는 반면 아침 출근시간은 동일해 절대적인 수면의 양 자체가 부족해질 수 있다.
여름밤의 더위는 쉽게 잠을 설치게 만든다. 잠들기 가장 쾌적한 실외 온도는 18~20도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온이 25도를 넘어가는 열대야가 잦은 여름철에는 체열이 쉽게 방출되지 않아 수면 개시가 어렵다.
계속되는 높은 습도는 불쾌지수를 높이고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티졸 수치를 올려 잠자기 더 어렵게 만든다. 육체적·정신적 피로가 겹치는 경우에는 스트레스성 불면증에 시달리게 될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나쁜 습관들도 한 몫을 한다. 시원한 술을 마시면 편안히 잠들 것이라 기대하는데 잠들기는 쉬워도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혈중 알코올 농도가 떨어지기 시작하면 오히려 잠에서 더 쉽게 깨게 된다. 음주 때문에 깊은 수면이 사라지고, 알콜의 근이완 효과로 인해 기도 주위의 근육이 약화돼 호흡이 힘들어져 수면 유지가 어려워진다.
또 다른 나쁜 습관인 야식은 위장을 움직이게 만들고, 위장의 운동은 뇌에 자극을 줘서 수면을 방해한다. 밤 늦게 마시는 커피나 카페인 음료, 격렬한 운동도 불면증을 유발할 수 있다.
여름철에 잠을 설치는 환자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행동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우선 잠드는 시간에 관계없이 일어나는 시간을 일정하게 맞추도록 한다.
이른 아침부터 햇빛을 많이 쬐면 멜라토닌 분비가 급격하게 줄고 금방 각성상태에 이른다. 멜라토닌 분비 곡선을 보면 대개 기상시간에서부터 14시간이 지나면 급격히 올라가서 수면을 유도한다. 이렇게 빛으로 인해 수면리듬이 형성되므로 일정한 기상시간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빛이 투과되지 않는 커튼도 숙면에 도움이 된다.
침실 온도와 습도를 쾌적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것도 좋다. 취침 1~2시간 전 선풍기나 에어컨을 가동해 집안의 온도를 낮추면 쉽게 잠 드는데 도움이 된다. 다만 수면 중에 밤새도록 선풍기나 에어컨을 켜놓으면 감기나 저체온증을 유발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잠을 잘 자기 위해서는 밤이 아니라 낮에 노력해야 한다. 대개 불면증 환자는 잠을 제대로 못 자서 피곤하다며 낮에 잘 움직이지 않으려 한다. 전날 밤에 잠을 설친 사람일수록 낮에 태양 아래에서 30분 내지 1시간 정도 걷는 것이 좋다. 낮에 밝은 햇빛을 충분히 쬐면 멜라토닌 분비 주기가 정상화된다. 신체적 활동 자체도 밤의 수면을 돕는다.
동의보감 ‘신형편’은 “여름과 가을에는 밤이 깊어서 자도록 하고 일찍 일어날 것”을 권하고 있다. 수면 또한 일종의 생체리듬이므로 이러한 리듬을 잘 유지하기 위해 생체조건과 수면환경을 잘 관리하는 것이 중요함을 잘 나타내는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무더운 여름철이라도 자신의 신체조건과 수면환경을 평소에 잘 관리한다면 수면 건강을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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