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발산하는 권력의 힘은 자녀들까지 훑고 지나간다. 부모의 우산속에서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자녀들이 있는가 하면, ‘일반인’으로서 적응하지 못하고 고단한 삶을 사는 이들도 있다. 격동에 현대사 그늘에서 삶을 포기한 비운의 주인공도 존재한다.
◆비극…일반인으로서 살기 힘들어
장기 집권한 대통령의 자녀들은 순탄한 삶을 살지 못했다.
비운의 첫 주인공은 이승만 전 대통령의 양아들 이강석씨(1960년 사망)다. 자식이 없던 이 대통령은 83세 생일이던 1957년 3월 26일 강석씨를 양자로 입적했다. 당내 2인자인 이기붕 국회의장의 장남인 강석씨는 이 대통령의 후광까지 덧칠하게 됐다. 강석씨를 사칭해 지방관가를 돌며 극진한 환대를 받고 돈까지 챙기는 ‘가짜 이강석’사건이 발생했을 정도다.
그러나 ‘귀하신 몸’ 강석씨도 민주화 물결 속에서 세상을 등졌다. 4·19 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하야 선언을 한 1960년 4월26일 강석씨는 아버지 이기붕과 어머니 박마리아, 동생 강욱 씨를 권총으로 살해한 뒤 자살했다.
18년간 집권했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아들 지만씨(53세)는 일상인으로서 적응을 하지 못했다. 그의 나이 16세와 21세때 어머니와 아버지를 흉탄에 잃었다. 1989년 이후 4차례나 필로폰 복용 혐의로 구속돼 보호감호 처분까지 받기도 했다. 법정에서도“죽어서 저승에 가면 부모님을 뵐 면목이 없다. 처벌을 받은 뒤 사회에 복귀하면 남들처럼 결혼을 해 가정을 꾸리고 싶다”는 최후진술도 했다.
지만씨는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2004년 12월 서향희 변호사와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현재 시가총액 2000억원이 넘는 ㈜EG의 회장으로 경영에 전념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아들 건호(38)씨, 딸 정연(36)씨도 아버지의 불행한 삶의 그늘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LG전자에 다니던 건호씨는 지난 2009년 터진 ‘박연차 게이트’로 4차례나 검찰에 소환되는 등 고통을 겪었다. 정연씨도 남편 곽상언 변호사와 참고인 신분으로 검찰 조사를 받았다. 퇴임 후 일가족이 검찰 수사에 시달리던 도중 노 전 대통령은 2009년 5월23일 봉하마을 부엉이 바위에서 투신 자살했다.
건호씨는 이후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각종 선거 출마설이 끊이지 않았다. 민주당 등은 아버지의 뜻을 잇기 위해서라도 정치에 투신해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다.
◆안정…독립적으로 각자 영역 구축
비교적 재임 기간이 짧았던 대통령들의 자녀는 대체로 각자의 영역에서 일반인으로 살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두 아들이 대표적이다. 초등학교를 1년8개월여간 청와대에서 다닌 윤 전 대통령의 장남 상구(64)씨와 차남 동구(61)씨는 독립심을 키워야 한다는 부모의 뜻에 따라 고교시절부터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했다. 윤 전 대통령 본인도 영국 에든버러 대학을 졸업한 유학파였다.
상구씨는 소규모 건축자재 수입업체 등을 직접 경영하는 등 사업가로 살았다. 동구씨는 화가로 예술가의 길을 걸었다.
11개월 남짓 재임한 최규하 전 대통령의 3남매도 일반인으로 각자의 영역을 구축한 상태다. 맏아들 윤홍씨(66)는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입사해 일본지역본부장 등 요직을 거쳤고 한국지역난방공사 사외이사를 역임했다. 작은아들 종석씨(60)는 외환은행과 하나은행을 거치며 금융인으로 살았다. 현재 한국투자공사 사장을 맡고 있다. 막내딸 종혜씨(58)는 전 외교통상부 본부 대사를 지낸 남편 서대원씨와 함께 안정된 삶을 살고 있다.
◆비리…권력남용에서 절대 자유롭지 못해
역대 대통령의 집권말기나 퇴임 직후 권력형 비리는 줄곧 나왔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차남 재용(47)씨는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부자’가 구속수감되는 사례를 남겼다. 재용씨는 2000년 12월말 외조부 고 이규동씨에게서 액면가 167억원 상당의 국민주택채권을 받고도 증여재산을 은닉, 74억3800만원 상당의 조세를 포탈한 혐의로 2004년2월 구속 수감됐다.
앞서 그는 1997년말 전 전 대통령의 12.12 사건 공판 도중 법정에서 야유를 퍼붓는 고 강경대 군의 부친을 폭행한 혐의로 친형 재국(52)씨와 검찰 조사를 받기도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52)씨는 대통령 자녀로 최초로 구속되는 사례를 남겼다. 문민정부의 소통령이라 불리던 현철씨는 1997년 10월 기업인 6명에게 66억여원을 받고 세금을 포탈한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그는 2004년에는 조동만 전 한솔 부회장으로부터 불법자금 20억원을 받은 혐의로 또다시 구속기소됐다.
아버지의 민주화 운동으로 암울한 청년기를 보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세 아들도 검찰 수사에선 자유롭지 못했다. 국민의 정부 시절 장남인 홍일씨(63)씨는 구속은 면했지만 차남 홍업씨(61)와 막내 홍걸씨(48)는 아버지 재임 기간 옥살이를 했다. 홍일씨는 참여정부 때인 2003년 나라종금 로비 수사 과정에서 1억5000만원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 불구속 기소됐다. 홍업과 홍걸씨는 2002년 각각 청탁 대가로 22억여원을 받은 혐의와 최규선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딸 소영씨(50)는 19만2000 달러를 해외에 밀반출한 혐의 등으로 1997년까지 세번이나 검찰에 불려가는 곤욕을 치러야 했다. 그는 특히 이 사건으로 외국 수사기관들로부터 현지에서 조사를 받는 수모를 겪었다. 이양호 전 국방장관의 뇌물사건때에는 보석을 받고 인사문제에 개입했다는 의혹으로 검찰에 불려가기도 했다.
◆정치2세…성공과 좌절의 갈림길
대통령의 자녀들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정치계에 입문해 성공과 좌절을 맞봤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남 홍일씨는 15대 국회의원으로 당선돼, 비례대표 등을 거치며 내리 3선에 성공했지만, 2006년 나라종금 수사 확정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했다. 그는 현재 유신독재시절 고문 후유증으로 파킨슨병을 앓고 있다. 차남 홍걸씨는 ‘지역구 물려주기’라는 비판을 받으며 2007년 전남 문안신안 재보선에서 당선됐지만 1년여 만인 2008년 18대 총선에선 낙선했다. 사실상 정계은퇴를 한 상황이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46)씨도 1994년 부친의 후광을 입고 당시 집권당인 민주자유당에 입성, 차세대 정치인으로 스포트라이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5년 터진 노태우 비자금 사건으로 노 전 대통령이 구속돼 금배지의 꿈을 접었다.
반면 박 전 대통령의 장녀 박근혜(59)씨는 유력한 차기 대선주자로 발돋움한 상태다. 30%대의 안정적인 지지도를 바탕으로 ‘미래권력’으로 주목받고 있다. ‘원칙과 신뢰’를 내세운 근혜씨는 2004년 탄핵 정국에서 한나라당 대표를 맡으면서 구원자 역할을 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에서도 여권내 견제자로서 세종시 수정 반대, 동남권 신공항 재추진 등 원칙을 강조하면서 ‘박근혜 대세론’를 확산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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