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이징=조용성 특파원) 2007년 6월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베이징(北京)과 난징(南京), 광저우(廣州), 란저우(蘭州) 등 군구 4곳의 사령관을 모두 교체했다. 이로써 전국 7대군구 중 6곳의 사령관이 모두 후주석이 임명한 인물로 바뀌었다. 이는 후주석이 군부를 완벽하게 장악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더 이상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의 군부내 영향력에 휘둘리지 않아도 됨을 암시했다.
당시 4곳 군구의 인사중 특히 관심을 모은 사람은 단연 베이징군구 사령관으로 임명된 팡펑후이(房峰輝) 전 광저우(廣州)군구 참모장이었다. 61세를 넘어 군구 사령관에 임명돼온 관례를 감안한다면 당시 56세라는 그의 나이는 대단히 파격적이었다. 특히 그는 군 관련 소프트웨어를 직접 개발하고, 무선통신ㆍ전자 분야에 관한 논문을 발표할 정도로 과학기술에 전문성을 갖춘 인물이다.
베이징군구는 수도를 경비하는 핵심부대로서 상징성이 높다. 때문에 팡펑후이는 후 주석의 높은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게다가 팡펑후이는 과학기술에 능한 인물로 후주석의 과학발전관을 충분히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장성이다. 팡펑후이는 2012년 10월에 개최될 제18대 전국대표대회에서 인민해방군 총참모장에 올라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발탁될 수 있는 유력한 인사로 꼽힌다. 그의 가장 큰 공적은 2010년 10월에 열렸던 건국60주년 열병식이다.
2009년 10월1일 베이징에서 거행된 건국60주년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열병식이었다. 이 열병식을 총지휘한 사람이 바로 팡펑후이다. 팡펑후이는 그해 3월 “성대하면서도 웅장하고, 검소한 열병식을 기획하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팡펑후이의 후진타오주석에 대한 보고로 시작된 당시 열병식에는 인민해방군 병력 8000여명이 창안(長安)가를 행진하면서 중국군의 발전과 기술 수준을 과시했다.
◆건국60주년 열병식 총기획자
56개 민족을 상징하기 위해 56개 부대가 동원됐으며, 3군 의장대를 필두로 14개 도보부대, 30개 장비부대, 12개 공중 편대가 한치의 오차도 없이 행군과 에어쇼를 연출했다. 장비부대는 1개 부대당 2대의 지휘 차량을 앞세우고 핵 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 등 모두 108기의 미사일과 탱크, 전차, 대포 등 최신형 무기들을 처음으로 공개해 주목을 받았다.
제2세대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인 ‘둥펑(東風)-41’은 사거리 1만4000㎞로 길이 17.5m, 둘레 2.2m, 무게 20t에 300만t급 핵탄두 1개나 30만t급 핵탄두 6개를 탑재할 수 있다. 잠수함 발사 탄도미사일(SLBM) ‘쥐랑(巨浪) 2호’는 사거리가 8000㎞로 미국 본토까지 타격이 가능하다.
공중 편대는 톈안먼(天安門)광장 상공에서 굉음과 함께 중국이 자체 개발한 조기경보기와 공중급유기, 무인정찰기, 차세대 전투기, 헬리콥터 등으로 사다리꼴 대오를 이룬 채 9분20초 동안 도심 상공에서 에어쇼를 연출했다.
팡펑후이 사령관은 인민해방군 공군 수송기 18대, 소무차(消霧車:안개를 해소하는 차) 48대, 요원 260명으로 구성된 특수부대를 동원했고 전날 밤 인공강우를 뿌려 행사 당일 맑은 날씨를 조성했다. 이 행사는 중국 관영 중국중앙(CC)TV 등을 통해 전국에 생중계됐고 신화통신과 인민일보 등 주요 언론사 사이트들도 문자 중계 및 각종 기사를 내보냈다. 중국인민들은 장엄한 광경과 자신들의 국가가 이만큼 강성해졌음에 흡족해했다.
◆”근대사 치욕 다시는 없다”
팡펑후이는 열병식에 앞서 관영언론인 신화사와 인터뷰를 갖고 “과거 서방세계 8개국가가 중국을 침략해 베이징에 입성한 후 1900년 8월18일 톈안문(天安門)에서 열병식을 거행한지 109년이 지났다”며 “아편 전쟁 후 점차 반식민지의 반봉건 사회로 전락한 중화민족은 거대한 치욕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회주의 신중국을 세운 후 중국인민해방군은 중국공산당의 영도 아래의 인민 군대였다”며 “언제나 중국 특색 사회주의의 위대한 깃발을 높이 들고 단호하게 당 중앙, 중앙군사위와 후 주석의 지휘를 받들어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시는 외세의 유린을 용납하지 않을 충분한 역량을 지닌 군대가 양성됐다”고 힘줘 강조했다.
이어 팡펑후이 사령관은 “열병식의 시간을 줄였고, 열병식 훈련시간을 줄였으며, 열병식을 위한 장비구입이나 의류구입을 하지 않았고, 공개입찰을 통해 열병식 비용을 줄였으며, 재활용을 독려해 물자경비관리를 강화하는 등 검소한 열병식을 계획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팡펑후이 사령관은 “중국 특색을 드러내며 중국 기백을 떨칠 수 있으며, 민족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해 성대한 열병식을 준비했다”며 “비용은 줄였지만 여느 열병식보다 더 웅장한 스케일을 구현해 낼 것이라고 자신한다”고 말했다.
건국 60주년의 열병식을 성공적으로 치러낸 팡펑후이는 이듬해 10월 중장에서 상장으로 진급한다. 2005년 중장으로 진급한 후 4년만에 상장에 진급한 것. 당시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장친성(章沁生) 장군도 상장으로 승진했다. 장친성 장군은 팡펑후이와 함께 차기 총참모장을 노리고 있다.
◆중국 서부지역에서 성장
1951년 4월에 태어난 방봉휘는 산시(陝西)성 셴양(咸陽)시 빈(彬)현 청관(城關)진에서 태어났다. 인민해방군에 입대한 것은 17세인 1968년 2월이었다. 국방대학 국방연구원에서 학사학위를 받았다.
팡펑후이는 신장(新疆)위구루자치구에서 소대장, 작전 및 훈련 참모과장, 연대참모장, 연대장, 사단 참모장을 역임했고 중국인민해방군 신장군구 부참모장까지 올라갔다. 이후 인민해방군 란저우(蘭州)군구 제 21집단군으로 자리를 옮겨 부군단장, 군단장을 지냈다. 1998년에 소장 계급으로 진급했고 이후 2003년 12월 광저우(廣州)군구 군구참모장으로 전임갔다. 2005년 7월에 중장 계급으로 진급했다.
팡펑후이는 화합에 능한 사령관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특히 그는 시대가 변했고 과거와 같이 이념만을 내세워서 군을 지휘하기에는 병사들의 개성이 너무 뚜렷해졌음을 일찍이 파악했다. 인민해방군내의 공통된 인식은 병사들간의 관계나 지휘관과 병사의 관계에서 잦은 마찰이 발생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팡펑휘는 상급자와 하급자간의 소통을 중요시했다. 그는 군내 사병들의 생활을 잘 알고 있으며 그들의 사고방식에도 이해가 깊었다. 그는 21군 군단장을 할 때 “현재 병사간의 사이에는 빈부차이, 문화차이, 배경차이, 연령차이, 사상차이 등 다섯가지 갈등요소가 있다”며 “병사들 사이의 관계는 상당히 절박한 수준에 와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신세대 사병들은 개성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간의 화합이 중요하다”며 “지휘관은 새로운 시각, 새로운 사고방식으로 병사들을 관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팡펑후이는 “기층간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며 사병들간의 갈등을 해소하는 것은 일선 장교들의 책임”이라고 말했다. 장교들은 사병들로부터 존경을 받아야 하며 우선 언행일치를 해서 성숙한 인격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선통신이 취미
팡펑휘에게는 취미가 두 개 있었다고 전해진다. 우표수집과 무선통신이 그것으로 일반적인 군인들과 달리 차분하며 정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젊은 시절 열정을 가지고 했던 우표수집은 시간이 많이 들기 때문에 일찍이 그만 뒀다고 한다. 하지만 무선통신은 직업상으로도 많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여가시간이 날때마다 무선통신을 즐긴다고 한다. 그는 잡지 ‘무선통신(無線電)'을 정기구독한 지 20년이다.
컴퓨터에 관한 관심도 많다. 그는 컴퓨터 관련 잡지도 구독하고 있으며 한가할 때 컴퓨터실에 들어가 군사지휘방면의 소프트웨어를 개발하며 전형적인 컴퓨터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최근 과학연구와 기술혁신에서 여러가지 건의사항을 내고 스스로 실천해 보이기도 했다. 특히 최근에는 해방군내 IT에 능숙한 부하들과 함께 지휘자동화 영역에서 일련의 성과를 낸 것으로 전해진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