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이미호 기자) “고졸 채용, 권고라고는 하지만 부담스러운게 사실이에요.”
정부가 공생발전의 후속조치로 내놓은 고졸 채용 확대 방안을 놓고 공공기관들은 기관별 특성을 무시한 처사라고 토로했다.
◆고졸채용, 사실상 이공계열만 가능
공공기관들은 앞으로 고졸자 채용가능 직무에서 결원이나 증원 발생시 고졸자를 우선 채용할 방침이다. 이를 위해 다음달까지 인사규정을 정비하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사실상 이공계열 학과를 졸업한 고졸자 위주로만 정규직 채용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이공계열 졸업자들을 필요로 하는 한국전력이나 가스공사, 수자원공사 등은 기존 인원을 확대하면 되지만 고졸자가 일할 수 있는 업무가 제한돼 있는 금융권은 사실상 ‘울며 겨자먹기’로 채용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한 금융공기업은 몇년전부터 학력제한을 두지 않는 열린채용을 통해 직군을 통합해왔다.
서무 및 출납 업무의 경우 아웃소싱을 통해 처리하고 이를 총괄해 종합지원부서로 운영하고 있는데, 고졸채용을 위해 오히려 기존에 운영하고 있던 출납이나 계약직업무를 분리해야 한다는 것.
공사 관계자는 “11월말까지 고졸채용 인원을 확정해 재정부에 제출해야 하는데 금융권은 사실상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다”며 “전산부문만 해도 관련학과 출신자를 기존에 따로 뽑았었는데 이 부분도 최근 통합하려고 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공기업은 “현재 본사 내에서는 고졸채용 관련해서 채용 수요가 없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무역이라는 업무의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고졸 채용이 힘들지만 본사에서 자산관리 수요가 있다고 하면 그 부분에서는 검토할 수도 있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지난 2일 이명박 대통령이 “지금부터 의무적으로 고교채용 비율을 상당히 올려줘야 한다”며 “제도적인 것을 우리 정부가 파격적으로 해보자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밝힌 자리는 윌테크놀러지라는 기술관련 제조업체 현장이었다.
◆ 고졸 일자리 가이드라인 ‘여기까지?’
이처럼 이공계열 위주로 국한된 정부의 고졸 채용방안은 고졸자를 위한 정부 지원책은 '여기까지'라는 가이드라인, 즉 한계를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김종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번 대책은 고졸자도 채용을 보장해주고 일자리를 찾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도의 시그널”이라며 “채용규모가 많지 않은 상황일라 과연 고졸 취업자들의 숨통을 트이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금융권의 경우 고졸 채용의 모순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라고 지적했다.
그는 “은행권은 7~8년전만해도 비정규직으로 고졸자를 채용했었는데 청년실업이 장기화하면서 그 자리를 대졸자가 채웠다”면서 “정부가 이러한 고용 생태계를 반영하지 않고 텔러 같은 경우를 고졸자로 따로 채용하겠다고 하면 대졸자들이 텔러로 일할 수 있는 영역을 빼앗기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반박했다.
대학 졸업자 등 여전히 고학력자 실업률이 높다는 점을 감안해 공공기관 등에 잠재해 있는 임금격차나 승인 문제를 함께 풀어가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신진욱 중앙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이번 고졸채용 발표로 이른바 고졸자가 하는 일, 대졸자가 하는 일이 명확해지면서 오히려 학력차별이 더 심화할 것”이라며 “정부가 고졸자를 차별하는 분위기를 바꾸려고 하지도 않은채 정책만 추진한다면 역차별이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말했다.
서비스산업 활성화와 함께 고졸자들이 이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종진 연구위원은 “공공행정 및 복지분야에서 고졸자들이 일할 수 있도록 정부차원에서 교육을 하고 고용을 보장한다면 대졸자의 취업기회를 차단한다는 비판에서 벗어나고 고졸자 채용도 활성화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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