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시대 핵심100인] <64>천레이 – 중국내 최고 수자원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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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9-29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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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조용성 특파원) “가능한 모든 계책(天方百計)을 내야하며 1초의 낭비없이(爭分奪秒) 실행해야 합니다. 탕자(唐家)산 옌써후(堰塞湖) 인근 몐양(綿陽)현 인민들에게 닥친 위험을 사전에 방지하는데 총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2008년 6월5일 쓰촨(四川)성 대지진 복구현장 지휘부에서 중국 국무원 수리부장 천레이(陣雷)는 목이 터져라 외쳤다. 당시 135만명의 난민이 대피해 있던 재난구역 인근에 위치해 있는 옌써후가 지진의 영향으로 범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었다. 이렇게 되면 지진을 겪은 생존자들이 업친데 덮친 격으로 심각한 수해를 입게 될 판이었다.

천레이는 수리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반복적으로 대책을 강구했고 결국 옌써후가 붕괴되지 않을 정도의 물을 지속적으로 내보내는 방법으로 호수의 범람을 막았다. 이로 인해 쓰촨대지진 당시 홍수로 인한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홍수를 방지하는 일은 국무원 수리부의 주요업무 중 하나다. 국가홍수가뭄방지총지휘부 사무실도 수리부에 설치돼 있다. 천레이는 2009년 CCTV와의 인터뷰에서 “우리는 여러 지역에서 서로 다른 전쟁을 치르는 경우가 허다합니다”라며 “어떤 때는 홍수를 예방하면서 동시에 가뭄을 관리해야 하고, 동시에 다른 지역에서는 태풍에 대한 대비도 해야 합니다”고 소개했다. 2009년 타이완에서 700명이상의 인명피해를 냈던 태풍 모라꼿(MORAKOT)이 중국본토에 상륙했을 때 천레이는 무려 160만명을 대피시키도록 했다. 과감하면서도 파격적인 결정이었다. 이로 인해 강태풍이 왔음에도 재난자는 8명에 그쳤다.

그의 사무실에는 ‘셴션(獻身, 헌신), 푸저(負責,책임감), 츄스(求實,실사구시)’ 여섯글자의 휘호가 걸려있다. 그만큼 재해방지는 그의 가장 큰 임무다. 하지만 동시에 수자원을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작업도 그의 중요한 임무다. 특히 수리부는 2013년까지 전면적으로 농촌 주민의 음용수 안전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천레이 부장은 “내 가장 큰 기대와 소망은 바람이 적당히 불어주고, 비가 적당히 내려서 강이 범람하지 않고 곡식들이 잘 자라 나라가 번영해 지는 것”이라면서 “또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물에 관심을 가지고, 물을 절약하고, 수자원을 보호해 우리 후손들이 혜택을 입도록 해야 한다”고 자신의 바람을 나타냈다.

수리업무는 중국 공산당이 최우선적으로 강조하는 정책이다. 공산당 중앙은 2011년 1월 ‘수리사업의 개혁•발전 속도를 높이는 데 관한 결정’이라는 제목의 ‘중앙 1호 문건’을 발표했다. 국무원은 최우선 당면 과제로 수해 및 가뭄방지와 안정적 수자원 공급을 위한 수리사업을 제시하며 향후 10년간 4조위안을 투입하기로 했다.

1호 문건은 당 중앙위와 국무원이 매년 1월 처음으로 산하 기관에 하달하는 중요 정책문서다. 2004년부터 작년까지 7년 연속 농업, 농촌, 농민 등 이른바 ‘3농(農) 문제’를 다뤘는데 2011년에 문건의 주제가 바뀌었다. 중앙 정부가 중요 문건에서 수리사업의 중요성을 전면적으로 제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해 중국 서남부 지역에서 심각한 홍수 및 가뭄이 발생하면서 농산물 값이 급등하자 취약한 수리시설 확충에 나서기로 한 것으로 분석됐다. 또한 향후 중국의 고정자산투자 중점분야가 철도와 도로에서 수리쪽으로 바뀔 것을 예고했다. 천레이의 임무가 더욱 막중해진 것이다.

당시 천레이 부장은 ”당의 중요 문건에서 수리사업의 중요 지위가 전면적으로 천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며 ”이번 1호 문건을 통해 수리사업이 경제안보, 생태안보, 국가안보의 전략적 높이에서 다뤄지게 됐다“고 평가했다.

천레이는 자타공히 중국내 최고의 수리전문가 중 한명이다. 그는 1954년6월 베이징(北京)에서 태어나 고교를 졸업한 후 문화대혁명의 영향으로 닝샤(寧夏) 905공장으로 하방돼 노동자로 근무한다. 성실하고 총명했던 천레이는 당의 추천을 받아 1976년 공농병학생 자격으로 둥베이(東北)공학원 금속재료학과에 진학했다. 졸업후 1980년부터 화베이(華北)수리수전학원 강사를 하면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85년에는 중국관개기술개발회사로 자리를 옮겨 10년동안 근무하며 총경리까지 올라간다. 1995년에는 전문가특채의 형태로 국무원 수리부로 스카우트됐다. 이후 수리부에서 승승장구했으며 차관급인 수리부 부부장까지 올라간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는 전문성은 뛰어나지만 지방경력이 부족했던 그를 지방으로 보내 커리어상의 약점을 보완토록 했다. 그는 2005년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 정부 부주석으로 이동했다가 2007년 수리부 부장으로 베이징에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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