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추석은 고르지 않은 일기와 이전 보다 이른 탓에 햅쌀이나 햇과일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민족은 옛날부터 추석을 한가위라 일컫고 추원보본(追遠報本)하는 명절로 지냈다. ‘추원보본’이란 “조상의 덕을 추모하여 제사를 지내며, 자기의 태어난 근본을 잊지 않고 은혜를 갚는 것”이라고 우리 말 사전에 새기고 있다.
농업은 자연과 인간이 어우러져 일구어낸 인류 최초의 산업이며, 우리 삶의 근본이었다. 추석은 이러한 농경문화중심의 삶의 질서 속에서, 햇곡식과 햇과일을 추수해 하늘과 조상의 은덕에 감사하는 한민족의 추수감사제였다. 우리 선조는 대대로 아름다운 금수강산과 조화 속에서 농업을 영위하면서 진정한 삶의 의미를 찾아왔다. 하지만 현대에는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농업은 과거의 산업이 되 버린 듯해 안타깝다.
그동안 우리는 5000년 농업 역사 속에서 늘 식량을 자급하지 못해 보릿고개 등 배고픔의 시련이 반복됐었다. 하지만 불과 30여 년 전인 1970년대 통일벼 보급에 의한 주곡의 자급 달성이라는 '녹색혁명' 금자탑을 쌓았다. 1980년대부터 비닐하우스 농업에 의한 계절 없는 농사를 짓게 되면서 '백색혁명'이라는 또 하나의 월계관을 쓰게 된 것이다.
어느 경제학자는 기성세대에게 후손들을 위해서 무엇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TV, 반도체, 자동차 등을 수출해서 외화를 많이 번 것 보다 배고픔을 해결했다고 답한다. 이처럼 아무리 첨단 과학이 발달하고 IT시대에 접어들었다고 해도 농업은 가장 오래된 산업이자 가장 오래될 산업이라는 진리는 변함없다. 우리 후손에게 물려주어야 할 것은 바로 건강한 농업생태계와 행복한 농촌, 그리고 강한 농업인 것이다.
다만 농업이 과거에는 식량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여기에 더해 안전한 농산물 공급과 농촌 지역사회의 유지, 국토 및 환경의 보전, 전통 및 문화의 계승 등 농업의 역할이 더 많아지고 있다. 또한 생활공간, 레저와 휴식 공간, 문화와 교육 등 농촌의 가치는 갈수록 증가하고 있다. 농촌의 규모는 작지만, 영역은 더 커지는 구조가 된 것이다. 이처럼 농업은 인간이 필요로 하는 가장 기본적인 먹을거리와 삶의 질을 높이는 중요한 산업이다. 하지만 현실은 농업의 위치와 농업의 주체인 농업인의 사회적 지위는 상대적으로 낮은 상태에 머물고 있다.
현재의 추세가 계속된다면 다음 세대는 소규모 농업 종사자마저 완전히 없어질 것이라는 전망이다. 우리가 지금 시급히 해야 할 일은 무엇보다 농업과 농촌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 인식을 새롭게 하는 한편 농업과 농촌의 경쟁력을 끌어 올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과거 농업의 기본을 철저히 돌아보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옛것을 돌아 본 다 함은 고루한 과거로 복귀하자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살펴보면서 더 좋은 방안을 찾자는 것이다.
최근 10년 사이에 한식이 세계에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런 것들을 보면서 과거와 역사를 돌이켜 보는 것이 고루하고 뒤떨어진 과거로의 회귀라고 비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떻게 보면 우리 세대가 과거 조상의 좋은 전통과 지혜, 그리고 자원들을 지금 맘껏 누리고 있는 것이다. 농업과 농촌을 진부하고 위기의 산업으로 인식할 것이 아니라, 자연사랑과 인본주의 정신을 바탕으로 사람살기 좋은 마을, 사람들이 와서 살아보고 싶은 농촌이 될 수 있도록 과거를 다시 한 번 돌아보고 더욱 계승 발전시키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추원보본’의 의미 일 것이다.
요즘은 친환경 농산물과 더불어 농산물보다 농업인의 마음과 정성, 기발한 아이디어나 이야기를 담은 감성적 서비스가 소비자들에게 더 큰 강점이 되고 있다. 또한 치열한 경쟁과 도전으로 급박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벗어나 자기 성찰의 시간과 자연의 경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농촌에서의 삶이 훨씬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우리 농업과 농촌은 오래된 과거이기도 했지만 자연과 어우러져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며 참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농업과 농촌이야말로 우리가 찾는 새로운 미래일지도 모른다.
(아주경제 강갑수 기자)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