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전인대 기자간담회에서 쉬서우성 후난성 성장은 기자들로부터 강성조합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단지 하나의 별명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이 별명을 무척 좋아하고 가슴 뿌듯하게 생각한다”며 “나는 후난성에 와서 매운 음식 먹는 법을 배웠고, 후난방언을 배웠고, 후난사람이 된데 이어 기분 좋은 별명마저 생겨서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직제상 후난성 성장은 후난성 서기의 하급자다. 서기인 저우창은 1960년생으로 차차기 공산당 총서기 후보군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정치스타다. 쉬서우성은 1953년생으로 저우창에 비해 7세 많다. 하지만 그는 저우창 서기를 깍듯이 대하면서 상당히 좋은 팀워크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쉬서우성 성장은 2010년 6월 후난성장으로 보임받았다. 당시 저우창 후난성장이 후난성 서기로 승진했고 공석이 된 후난성장직에는 상당히 강한 경쟁자가 존재하고 있었다. 당시 유력한 후난성장으로는 리펑(李鵬) 전(前) 총리의 장남인 리샤오펑(李小鵬.51) 산시(山西)성 부성장이 거론됐었다. 하지만 리샤오펑을 성장직으로 중국정치의 전면에 내세우기에는 공산당으로서는 부담스러웠다. 베이징 외교가 한 관계자는 “리펑 전 총리에 대한 중국인민들의 이미지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며 특히 리샤오펑의 평판 역시 훌륭하지는 않았던 점이 고려됐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결국 후난성장 자리에는 당시 간쑤(甘肅)성 성장이었던 쉬서우성에게 돌아갔다. 대신 리샤오펑은 산시성 상무 부성장으로 승진했다.
쉬서우성은 후난성 성장에 오른 이후 맹렬히 외자유치에 나서고 있다. 지난 6월 후난성에 기반을 두고 있는 싼이(三一)중공업의 초대형 유럽 산업단지 준공식이 독일 쾰른에서 열렸다. 최근 후난성 부서기로 내정됐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는 싼이중공업의 량원건(梁穩根) 회장이 준공식에 참석한 건 당연지사지만, 이 자리에 쉬서우성 후난성장이 참석한 것은 이례적이었다.
쉬 성장은 싼이중공업 준공식 참석을 통해 독일 기업들을 상대로 한 투자유치에 나선 것. 쉬서우성은 준공식 축사를 통해 “싼이중공업은 최근 공정기계방면에서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기업이며 독일의 공업지구는 미국, 인도에 이은 세번째 해외공장”이라고 치하한 후 “후난은 자원친화형, 자원절약형 산업에 대해 강하게 지지하고 있으며 미래 5년동안 후난성은 지속발전능력을 강화시켜 여러 산업영역내에서 10조위안을 투자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그는 “싼이중공업을 통해 후난을 알게 된 독일 기업들이 후난에 투자를 해 발전의 기회를 공유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프랑크푸르트와 스투트가르트 등지를 찾아 보쉬, 지멘스 등 독일계 굵직한 기업들의 고위경영자들을 차례로 만나 투자유치활동에 나섰다. 그는 “우리는 성심성의껏 외자기업에 대하고 있으며 물심양면으로 지원할 의사가 있다”고 반복적으로 강조했다.
1953년1월 장쑤(江蘇)성 루둥(如東)에서 태어난 쉬서우성은 1970년에서 1977까지 자신의 고향인 루둥현 생산대에서 지식청년으로 하방돼 농민으로 지냈다. 이어 그는 루둥현의 징하이(靖海) 인민공사 부서기, 루둥현 번차(栟茶區)구 부서기 등을 역임했다. 1994년 루둥현 현정부로 이동한 후 1991년까지 현장, 서기 등을 역임했다.
탁월한 성실성으로 그는 장쑤성 공산당 고위층의 관심을 받았으며 1991년에는 38세의 이른 나이에 장쑤성 롄윈강(連云港)시 시장으로 부임받았다. 1996에는 장쑤성 쑤첸(宿遷)시 서기로 이동했다. 연안지역의 유능한 인재들을 서부내륙지역으로 보내 개발의 경험을 공유하게끔 하는 공산당 중앙의 인사정책에 따라 그는 2001년 간쑤성 상무 부성장으로 승진이동한다. 이어 그는 2006년 53세의 나이로 간쑤성 성장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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