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기행7-산시성편> 1-2 셰저우 관제묘의 백미, 춘추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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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6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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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제묘의 백미 '춘추루'


춘추루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진 관제묘 마지막 패방.


(아주경제 홍우리 기자) 숭녕전을 지나 안쪽으로 들어가면 춘추루(春秋樓)를 중심으로 한 관제묘의 '후궁'(後宮)'이 나온다.

'기숙천추(氣肅千秋, 두려움과 존경의 대상인 관우)' 네 글 자가 새겨진 목패방 문턱에 서니 가운데 자리잡고 있는 고목(古木)사이로 춘추루가 모습을 드러냈다. 패방을 들어서면 '도루(刀樓)'와 '인루(印樓)'가 좌우에 나란히 서 있는데, 이곳은 관우가 아꼈다는 '청룡언월도'와 권력의 상징인 도장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전해진다.

춘추루는 전국의 많은 관제묘 중 이 곳 셰저우 관제묘에서만 볼 수 있는 건축물로, 관우의 침궁(寢宮)에 해당하는 곳이다. 전장에서도 공자의 사서(史書) 중 하나인 춘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는 관우의 문관적인 성품을 기리 위해 마련한 공간으로, 춘추루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춘추루 앞에서 위용을 뽐내고 있는 두 그루의 고목 나무. "뿌리는 용의 입, 나무 기둥은 용의 몸, 가지들은 용의 꼬리를 닮았어요. 누가 특별히 다듬은 적도 없죠. 모두 관제묘에 감도는 영험한 기운이 만들어낸 것"이라고 안내원은 설명했다.

한 걸음 멀리서 바라본 춘추루는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세로 기둥 끝을 건물 바깥 쪽으로 빼고 천장과 건물 벽 사이에 기둥을 가로로 엇갈리게 놓으면서 착시효과를 일으킨 것. 관제묘 뿐만 아니라 이러한 구조는 중국에서 유일무이하다고 한다.

명대에 처음 지어진 춘추루는 셰저우 관제묘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다. 1층의 굳게 닫힌 나무 문 사이로 만면에 웃음 띈 얼굴의 관우 상이 보였다. 이 곳의 벽면은 관우가 생전 애독했다던 춘추 전문이 새겨져 있었다. 컴컴한 벽면을 향해 손을 뻗어 더듬으니 손 끝으로 음각의 글자가 전해져 왔다. 복과 재물을 가져다 준다는 관우를 생각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새겨넣었을 후대의 정성이 함께 느껴졌다.

2층에서 춘추를 읽고 있다는 관우를 만나기 위해 오른 쪽에 마련된 계단을 올랐다. 당시 36개의 지방 정부를 상징한다는 계단을 딛고 올라가니 손에 춘추를 들고 침대에 걸터 앉은 관우 상이 보였다. 부리부리한 눈매, 호탕한 표정의 생동감 넘치는 모습은 마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먼길을 달려온 취재진을 반기며 막 일어설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안내원은 "다른 관제묘의 관우 상은 키나 외모가 과장되어 있다"며 "춘추루의 관우 상이 실제 모습에 가장 가깝다"고 자랑했다. 2층 바닥은 한개의 못도 사용치 않고 오로지 나무로만 돼 있다고 한다.

가늘게 흩날리는 빗방울과 짙은 안개에 가려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내던 춘추루. 기자는 그곳에서 충의와 절개의 화신으로서 많은 이의 가슴에 살아 숨쉬는 삼국 또 다른 '황제' 관우를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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