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정육점 냉동창고에 공개된 '왕중의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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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10-26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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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이규진 기자) 지중해에 접한 리비아의 북부 도시 사르테의 천막집에서 태어나 불과 27세에 쿠데타로 권력을 쟁취한 사막의 영웅, 무아마르 카다피. 2011년 10월 21일 그의 시신은 미스라타의 한 정육점 냉동창고에 공개적으로 전시됐다. 상의가 벗겨진 채 핏자국과 멍으로 얼룩진 그의 시신은 체포직후 많은 사람들로부터 심한 구타를 받았음을 증거한다.

카다피는 정권을 잡으며 과감하게 왕정을 폐지하고 자주 자립의 리비아 아랍공화국을 선포했다. 사회주의와 이슬람교를 혼합한 이른바 제3세계 이론(Third Universal Theory)를 통치이념으로 삼고 인민주권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는 집권이후 해외기업 재산을 전부 몰수해 국가 부흥에 힘썼다. 국토의 3% 이하에 불과한 경작지를 가진 리비아는 빈곤했지만 유전이 발견되며 세계 제8위의 산유국으로 발전했다. 카다피는 석유산업을 국유화하고 90%에 달했던 문맹율을 50%로 낮추고 400만명이 넘는 인구 가운데 140만명을 무상으로 대학교육을 시켰다. 카다피는 여성을 문교 장관과 문공 차관으로 임명하며 사회 개혁에도 힘썼다.

그러나 그의 끝없는 권력 욕망이 문제였다. 그의 철권통치는 42년이나 계속됐다.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자식을 요직에 임명해 독재체제를 구축했다. 이에 반발한 리비아 시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기 시작했고 카다피는 리비아 시민에게 총격을 가했다. 이는 오히려 저항세력의 반발을 불러 미국·프랑스 등 서구 강대국들이 개입하면서 카다피는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그의 마지막은 처절했다. 리비아 시민의 격분은 카다피의 작은 숨소리도 허락하지 않았다. 생포해서 재판을 받고 죄값을 치러야 한다는 국제적 여론에도 불구하고 그는 잡힌 순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뭐가 어떻게 된거지?”“살려 줘” 그의 마지막 말이다.‘왕 중에 왕’이라고 불리던 사막의 절대 권력자 카다피. 권력을 내려 놓으니 현실이 보인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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