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잠항에 성공했던 잠수함은 인민해방군 403호 잠수함이었으며, 함장은 현재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을 맡고 있는 쑨젠궈(孫建國)였다. 그는 이 성공으로 인해 유명세를 탔음은 물론이고 이후 고속승진을 거듭했다.
당시 쑨젠궈는 “잠항이 장기간일수록 위험도가 높고, 특히 잠수함의 고장발생 확률이 높아진다”며 “함정원들의 조종기술과 응급능력이 잠수함의 안전에 특히 중요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는 “잠수함내에는 낮과 밤이 없으며 인체의 생체리듬에 악영향을 끼쳐 잠항 후반기에는 체력이 급속히 떨어진 나머지 함정원들이 소화불량이나 불면증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다”며 “하지만 일단 근무태세에 돌입하면 놀라운 집중력과 책임감을 보여준 함정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장기잠항훈련의 성공을 위해 그는 출항전에 함정원들과 함께 수많은 응급예비안을 만들었으며 모든 항목에 대해 상세한 반복훈련을 했다. 결국 그는 미국 노틸러스호가 갖고 있던 잠수함 최대항해시간이었던 84일을 경신했다. 그는 90일동안 성공적으로 잠항해 인민해방군 해군 내에서 ‘철의함장’이라는 영예로운 별칭을 얻었다.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인 쑨젠궈는 1952년 2월생으로 허베이(河北)성 우차오(吳橋)사람이다. 그의 부인인 궈야츄(郭亞秋)는 잠수함정 교원이며, 아들의 이름은 잠수함의 ‘잠’자를 사용해 쑨첸(孫潛)이라고 지었다.
쑨젠궈는 1968년9월 해방군에 입대했으며 해군잠수함학교에서 항해를 전공했다. 졸업이후 잠수함 부대로 배치돼 일반사병에서부터 경력을 다져 잠수정 견습항해장, 행해장 등을 차례로 지냈다. 1978년 26세의 나이에 해군함정학원에수 부함장반에서 공부를 한 이후 계속해서 잠수함정 부함장, 함장, 핵잠수함장을 역임했다. 1996년12월 쑨젠궈는 44세에 해군함정기지 부사령관에 발탁됐다. 47세인 1999년 해군소장으로 진급했다. 그야말로 초고속 승진을 거친, 인민해방군이 배양한 젊은 장군이었다. 4년여 잠수함기지 부사령관을 지낸 이후 2000년 7월 쑨젠궈는 해군부참모장으로 승진했다. 그동안 잠수함 부대에서만 근무했던 그는 해군참모부에서 일을 하면서 인민해방군 해군 전반에 대한 분석과 통일조정능력을 지니게 됐다.
해군부참모장의 직무에서 만 4년을 꼬박 채운 쑨젠궈는 52세의 젊은 나이에 2004년 해군참모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2년 후인 2006년 그의 신분은 급상승한다. 그해 7월 계급도 소장에서 중장으로 올랐고 이어 12월 보직이 해군에서 인민해방군 총참모부로 전환된다.
쑨젠궈는 인민해방군 총참모부에서 총참모조리로서 량광례(梁光烈)와 천빙더(陣炳德) 등 두명의 총참모장을 보좌하게 된다. 그는 전군 군사건설을 기획하고 조직하고 전군의 군사행동을 지휘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2007년10월에 중앙후보위원으로 선출됐으며, 2008년 쓰촨(四川)성 대지진 당시 국무원 구조지휘부 구원조 조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군사전선지휘부를 구성해 구호작업을 벌였다. 민간과 함께 구조작업을 벌였던 것은 그의 커리어상에 플러스요인이다. 그리고 이듬해인 2009년 1월에 그는 부참모장에 올랐다. 그는 현재 부참모장으로서 인민해방군 참모부내에 인사, 훈련, 정치 등 세가지 분야를 맡고 있다.
쑨젠궈는 2011년 7월 허우수썬(侯樹森) 인민해방군 부총참모장, 자팅안(賈廷安) 인민해방군 총정치부 부주임, 류샤오장(劉曉江) 해군 정치위원, 장유샤(張又俠) 선양군구 사령관, 리창차이(李長才) 란저우군구 정치위원과 함께 상장에 올랐다.
쑨젠궈 부총참모장은 우성리(吳勝利)의 뒤를 이어 2012년 해군사령관 자리를 맡게 될 가능성이 높다. 해군사령관은 당연직으로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위촉된다. 연령으로 볼 때 그는 2012년이면 60세다. 그리고 제19차 전국대표대회가 개최될 2017년이면 65세로 퇴직연한에 걸리지 않는다. 때문에 그는 2017년이면 군사위원회 부주석에 오를 유력한 인사로 꼽히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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