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어서 삼국지 기행13-쓰촨성편> 3-1 새도 넘기 힘든 검문관, 촉한(蜀漢)의 마지막 보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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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2-06 1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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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 천혜의 요새 검문관

천혜의 요세 검문관

(아주경제 이재호 기자) 2000년 역사의 숨결을 간직한 란마창(攔馬墻)의 촉도(蜀道)를 뒤로 하고 본지 ‘걸어서 삼국지 기행’ 취재팀은 쓰촨성 삼국지 유적 탐방의 백미(白眉)라 할 수 있는 검문관(劍門關)으로 향했다.

검문관 주변은 깎아지른 듯한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험하기로 유명한 촉도에서도 최고의 험지로 꼽히는 곳이다.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들다는 천혜의 요새.

검문관은 제갈량(諸葛亮)이 눈물로 쓴 출사표를 유비의 아들인 후주(後主) 유선에게 바치고 위(魏)나라 정벌에 나설 때 지났던 관문이다.

또 위나라 장수 등애가 촉한(蜀漢)을 멸하기 위해 청두(成都)로 진공하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무너뜨린 관문이기도 하다.

촉으로 들어오기 위해 반드시 지나야 했던 검문관. 사방이 협곡으로 둘러싸여 있어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천혜의 요새로 불려 왔다.


본격적인 검문관 탐방을 시작하기 전 인근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으며 여독을 풀었다.

취재팀은 현지 여유국 국장의 초대를 받아 함께 저녁식사를 했다.

이날 식사의 주 메뉴는 두부. 검문관이 위치한 광위안(廣元)시 지엔거(劍閣)현은 두부로 유명한 고장이다.

역사적 유래가 있다. 이 곳은 두부를 만들 때 쓰이는 질 좋은 황두(黃豆)가 많이 생산된다.

검문관은 삼국시대 촉나라와 위나라의 주요 전장으로 군량미가 늘 부족했다. 장수들이 난감해 하고 있을 때 현지 주민들이 황두로 두부를 만들어 군사들에게 먹이고 콩비지는 전마(戰馬)로 쓰이는 말에게 먹이도록 했다.

그 말을 따랐더니 군사들이 기력을 되찾아 위나라 군대를 크게 이겼다고 한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중국인들과 삼국지를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이니 오랜 벗을 만난 것처럼 즐거웠다.

동아시아 역사의 기저에 자리잡은 삼국지 유전자가 힘을 발휘한 덕분이리라.

검문관이 있는 지엔거(劍閣)현은 옛부터 두부로 유명하다. 대부분의 두부 요리 이름은 삼국지 관련 고사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사진은 제갈량이 볏단을 실은 배로 조조로부터 화살 10만개를 빌려온 고사를 형상화한 요리.


이튿날 아침 일찍 검문관 탐방에 나섰다.

새벽에 비가 내린 탓에 안개가 잔뜩 껴 있었다. 운무(雲霧)에 휩싸인 검문관을 보니 18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신비로움과 망국의 한(恨)이 서린 쓸쓸함이 동시에 느껴졌다.

검문관 관루(關樓)는 높이 19.62m, 좌우 직경 18.30m로 명(明)대 건축양식으로 지어졌다. 검문관은 군사 전략적 가치를 인정받아 삼국시대 이후에도 수차례에 걸쳐 중건됐다.

검문관 인근 주민들은 삼국지 영웅이자 촉한의 마지막 대장군이었던 강유(姜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검문관 왼쪽에 있는 절벽 중앙에 사람 얼굴을 닮은 부분이 있다. 이곳 사람들은 이를 강유의 얼굴이라고 말한다.


검문관 주변을 살피던 중 관루 오른쪽 협곡으로 무너진 성벽의 잔해가 눈에 띄었다. 안내원에게 물었더니 지난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기존에 있던 관루가 무너져 내린 흔적이란다.

현재 관루는 2009년에 새로 복원된 것이다. 수천년의 시간을 견뎌온 천혜의 요새도 자연의 대재앙을 피해가지는 못했던 것이다.

잠시 상념에 젖어있을 때 한 중국인 관광객이 한국에서 온 취재팀이라는 사실을 알고 말을 붙였다.

“대지진 때 한국 국민과 기업들이 많은 도움을 준 데 대해 정말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는 대지진 피해 복구 현장에서 한국 기업이 보내준 물품을 이재민들에게 나눠주는 자원봉사를 했단다.

검문관은 지난 2008년 쓰촨 대지진 때 훼손돼 이듬해인 2009년 새로 지어졌다. 사진은 기존 검문관 관루가 지진으로 무너져 내린 잔해.


검문관을 통과하니 북쪽으로 외길이 나 있었다. 협곡 사이로 난 길은 마치 뱀의 꼬리처럼 길게 이어져 있었다. 옛 위나라의 서쪽 국경이었던 섬서(陝西)성으로 향하는 길이다.

촉나라 군대가 검문관을 지나 북벌에 나선 횟수는 총 16차례. 이 가운데 촉의 재상이었던 제갈량이 9차례의 북벌을 단행했다.

제갈량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이루기 위해 무리하게 북벌을 시도하다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적국의 영토인 오장원(五丈原)에서 눈을 감았다.

그렇다면 16차례에 걸친 북벌 중 나머지 7차례의 전쟁을 지휘했던 이는 누구일까.

여기서 취재팀은 이곳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삼국지 영웅, 강유(姜維)와 조우할 수 있었다.

강유는 위나라 장수였다가 제갈량에게 사로잡힌 후 그의 후계자가 된 인물이다.

그는 촉한의 후주인 유선이 위나라에 항복한 뒤에도 검문관을 사수하며 버티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항장(降將)인 강유는 촉한과 마지막을 함께 하며 충의의 상징이 됐다. 검문관에 대한 애착이 강한 이곳 사람들은 강유를 수호신이라고 부르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제갈량의 후계자인 강유(姜維)는 7차례에 걸친 북벌을 단행했으나 성공하지 못하고 결국 망국의 슬픔을 안고 자결했다. 검문관 입구에 강유(뒷쪽 중앙)와 부하 장수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검문관 너머로 난 길을 조금 걷다가 오른쪽으로 뇌명교(雷鳴橋)라고 불리는 다리를 건너 협곡 등반을 시작했다.

숨이 조금 가빠질 정도로 산을 오르니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오락거리가 마련돼 있었다.

특히 산 중턱에 자리잡은 3D 상영관이 인상적이었다. 검문관의 유래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관광객들을 상대로 유료 관람을 실시하고 있었다. 상영 시간은 15분 남짓.

상영관 주변으로 쓰촨성 명물인 대나무 숲도 깔끔하게 정돈돼 있었다. 검죽(劍竹)과 금죽(金竹) 등 각종 대나무들이 빼곡히 심어져 있었다.

관루를 감상할 때는 몰랐는데 검문관은 이미 상업적 가치를 지닌 거대한 관광단지로 조성돼 있었다.

중국 최대 명절인 국경절에는 하루에 3~4만명의 인파가 몰릴 정도라고 한다.

현지 여유국 관계자는 지엔거(劍閣)현 전체 수입의 75% 가량이 검문관 관광 수입이라고 전했다.

그는 “사실상 검문관에 이곳 주민들의 생계가 달려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귀뜀했다.

1800년 전 촉(蜀)을 지키는 보루였던 검문관이 이제는 주민들의 삶을 지키는 관광산업의 첨병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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