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배인선 기자)
‘랑랑은 21세기의 호로비츠다’ <독일 미러지>
‘만약에 랑랑이 주식이라면 나는 돈을 빌려서라도 사겠다.’ <월스트리트저널>
중국의 천재 피아니스트 랑랑(郞朗)에 쏟아지는 세계적인 찬사다. 중국 바링허우(80後 1980년대 출생 세대)를 대표하는 피아니스트 랑랑. 그는 장르를 넘나드는 파격적인 연주로 전 세계 클래식 음악계에 ‘랑랑’ 신드롬을 일으켰다.
피아노 앞에 앉아 연주하는 그의 얼굴 표정은 마치 악보와 대화를 나누는 듯 하다. 피아노 건반 위를 쉴새 없이 달리는 열 손가락은 청중을 매료시킨다.
지금의 랑랑이 있기까지엔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이 커다란 힘이 됐다. 그의 아버지는 군대에서 중국 전통 악기 얼후를 연주하던 음악가였다. 아버지는‘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피아니스트로 키우겠다’는 집념 하에 어린 아들 랑랑에게 매일 8시간씩 쉬지않고 피아노 연습을 시켰다. 그의 훈련 방식은 곧잘 천재적인 음악가 모짜르트의 아버지에 비유되곤 한다.
랑랑이 9세 되던 해에 부친은 당시 근무하던 선양시 공안국에 사직서를 제출하고 어린 아들을 데리고 베이징으로 상경, 랑랑을 베이징 중앙 음악학원에 입학시킨다.
랑랑의 베이징의 생활은 고됐다. 아버지는 아들이 조금이라도 피아노 연습을 게을리하면 화를 내곤 해 부자 간 자주 마찰을 빚기도 했다.
열세살의 나이로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해 천재적인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랑랑은 미국 필라델피아에 있는 커티스 음악원의 게리 그래프먼 교장의 추천으로 미국에서 공부하게 된다.
그러던 중 랑랑은 인생에 단 한번의 극적인 기회를 잡는다. 크리스토프 에셴바흐가 지휘하는 시카고 교향악단 연주회에서 당시 몸이 안좋아 결석하게 된 세계적 피아니스트 안드레 와츠 대타로 차이콥스키 피아노협주곡 1번을 연주한 것. 수만명의 관객을 압도한 랑랑은 이후 세계적인 천재 피아니스트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다.
그는 미국 5대 오케스트라를 비롯해 세계적인 거장들과 협연을 가지고, 미국 대통령의 초청으로 백악관에서도 세차례나 연주회를 가졌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2010년 상하이엑스포, 광저우 올림픽 등 세계적인 축제에도 항상 초청돼 현대 음악에 중국의 전통을 담은 환상적인 연주를 선보였다.
스타인웨이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피아노를 선보이고, 아디다스는 랑랑 스니커즈를 내놓았다. 아우디, 몽블랑, 소니, 파나소닉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앞다퉈 그를 후원하고 심지어 그의 자서전은 미국, 유럽 등 전 세계 십여 개국에서 번역돼 출판됐다.
지난 해 랑랑은 1억5000만 위안의 수익으로 포브스 중문판이 뽑은 중국에서 돈을 가장 많이 버는 예술인 2위에 꼽히기도 했다. 이로인해 랑랑은 예술적 순수성을 잃고 상업화됐다는 비난을 받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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