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경제 박현주기자= "미국에서 계급은 건강과 수명을 규정하는 강력한 힘이다. 더 많은 교육을 받고 더 많이 벌수록 심장마비와 뇌졸중, 당뇨, 그리고 각종 암으로 죽을 가능성은 그만큼 낮아진다. 상층중간계급의 미국인들은 중간계급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산다. 중간계급은 하층계급보다 더 오래, 더 건강하게 산다. 건강과 사회적 요인을 연구하는 이들은 그 차이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2005년 ‘문제는 계급이다(Class Matters)’란 제목의 탐사보도 시리즈를 시작했다. 계급의 초상을 제대로 담기 위해 1년간 미국 전역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사람을 인터뷰했다. 미국 국세청과 통계청의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설문조사도 했다. 교육, 의료, 소비, 주거, 결혼 등 여러 측면에서 계급 문제를 조명한다.
그동안 미국에서 계급이란 단어조차 금기시돼왔다. 주류 저널리즘이 애써 외면해온 불편한 진실을 최고 권위지가 해부한 것만으로도 의미가 크다. 이 책은 뉴욕타임스의 기획기사 시리즈를 엮은 단행본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지난해 월가를 점령한 시위대의 등장은 미국의 불평등 문제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상징하는 사건이다.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7.7%를 차지한다. 날이 갈수록 상위 1%와 하위 99%의 소득 격차는 벌어지고 있다.
소득의 차이는 단순히 풍요와 빈곤을 가르는 것만이 아니다. 현대판 카스트 제도라고 해도 좋을 만큼 모든 것을 결정한다.
심장마비는 누구나 걸릴 수 있지만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살아날 확률은 천양지차를 보인다. 블루 컬러의 아들은 좋은 대학에 진학하기도 어렵지만 운 좋게 들어간다 해도 비싼 등록금 때문에 중퇴하기 일쑤다. 문화적으로도 1%와 99%는 아예 다른 세상에서 살아간다.
미국은 더이상 기회의 땅이 아니다. 이민자들의 성공 신화는 빛바랜 전설로 남았다. 경기 침체가 장기화하고 실업률이 늘어나면서 빈부는 대물림되고 소득 계층은 계급으로 고착화됐다.
"2004년 미국 교육부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4년제 대학에 입학한 저소득층 학생들의 5년 내 졸업률은 41퍼센트에 불과했지만 고소득층 학생들의 졸업률은 66퍼센트에 달했다. 둘 사이의 격차는 최근 몇 년간 더 커지고 있다.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학교 총장은 2004년 하버드가 최하위층 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을 제공할 계획이라고 발표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오늘날 부유한 집 자녀들과 가난한 집 자녀들 사이의 격차가 커지고 있는데, 우리는 이것이 미국의 가장 심각한 국내 문제 가운데 하나라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교육은 우리가 이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137P)
최근 인기를 끈 드라마 '아내의 자격'은 강남의 사교육 현장을 배경으로 계급 특권에 집착하는 상층 계급의 욕망과 행태를 적나라하고 비판적으로 묘사했다. 계급 사다리의 상층에 위치한 상류층조차도 계급의 굴레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계급이라는 불편한 진실은 우리가 왜 어떻게 살고 있고, 무엇을 욕망하고 무엇에 좌절하는지를 해명하는 열쇠가 될 것이다. 또한 인터넷 매체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등장으로 위기를 맞은 신문들이 어떻게 활로를 찾아나갈 것인가에도 시사점을 던져준다. 37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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