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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5-17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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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경제 김진오 기자= 전기요금 인상을 놓고 정부와 산업계의 줄다리기가 팽팽하다. 정부는 원가회수율 등을 근거로 전기요금을 올려 한국전력공사의 눈덩이 적자폭을 덜어줘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서민 부담을 최대한 고려해 인상의 폭과 시기를 고민하고 있다.

최근 산업계 18개 단체는 “산업용뿐 아니라 주택용·일반용 등 모든 용도별 전기요금을 함께 올리라”며 전기요금 현실화를 정부에 촉구하고 나섰다. 늘 죽는 소리에 딴죽을 걸던 과거 행태에 비춰보면 ‘고통 분담’의 모양새라 이례적이지만 속내는 더욱 첨예하다.

혼자서 전기료 인상을 뒤집어쓸 수 없다는 심산으로 한발 앞서 배수의 진을 친 셈이다. 이같은 양측의 갈등은 이해 당사자들이 ‘제로섬 게임’에만 집착한 데 따른 것이라는 것이 업계의 관측이다. 상대방이 이익을 얻는 대신 자신은 피해만 본다는 생각 때문인 것이다.

여기서 합의점을 찾는다고 해도 국민을 볼모로 한 정치권이 대선을 앞두고 딱 버티고 있어 뚜껑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피해는 고스란히 서민들의 몫으로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편집자 주)

# 지난 2010년 6월 중순 한국전력 사업개척팀은 오전부터 암울한 기운이 감돌면서 이곳 저곳에서 술렁였다. 글로벌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기대했던 이집트 다이루트 발전소 입찰경쟁에서 적자기업이라는 이유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다이루트 발전소는 13억 달러 1500MW(메가와트)규모의 대규모 가스복합 화력 발전소로 수주가 이뤄질 경우 한전은 아프리카의 관문이자 유럽 시장 진출의 거점으로 활용한다는 복안이었다.

실패 이유는 다름아닌 사전적격심사(PQ) 부적합. 최근 4년간 계속해서 수천억원의 적자를 내고 있는 한전으로선 재무재표에 잣대를 들이대면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앞서 4월에도 사업개척팀은 인도네시아 발리가 발주한 4억 달러 규모 200MW 용량인 석탄 화력발전소의 수주전에 뛰어들었지만 같은 이유로 탈락의 아픔을 맛봤다. 기업 신용등급과 글로벌 기술력 등 기타 요건으로 맞섰지만 결과는 역부족이었다.

한국전력이 생산원가에 미치지 못하는 전기요금으로 만성적자에 허덕이고 있다. 돌파구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지만 매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적자로 인한 대외 신용도 하락으로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밖에 없다.

지난해 한전은 사상 최대인 3조5000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2008년 이후 계속된 적자로 4년간 누적적자 금액은 8조원에 이른다. 지난해 부채는 50조원, 부채비율은 113%였다. 2007년 22조원(49%)에 비해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한전은 올 1분기에도 2조38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다. 순손실은 8741억원이다.

경영성과를 나타내는 지표인 이자보상배율은 -2.1을 기록했다. 마이너스는 이자를 갚을 능력이 되지 않아 또 다시 빚을 내야 한다는 의미다.

이처럼 한전의 재무건전성이 악화되고 있는 요인은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전기요금 체계 때문이다. 지난해 두 차례 전기요금 인상에도 불구하고 한전의 원가회수율은 87.4%에 불과하다. 전기 1000원어치를 팔 때마다 126원의 손실을 보는 구조다.

한전은 지금과 같은 흐름이 최종등급 하락으로 이어질까 우려하고 있다. 대외신인도가 떨어져 조달금리가 오르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게 될 뿐 아니라 해외사업도 난항을 겪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초 국제 신용평가기관인 무디스는 한전의 자체 신용등급을 Baa1에서 Baa2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는 A2에서 Baa1으로 두 단계나 떨어졌다.

이대로 가면 한전은 글로벌 시장에서 ‘고립무원’ 신세로 전락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지난해 전기 요금이 30년 만에 처음으로 한 해 두 차례 걸쳐 인상됐지만 ‘요금 현실화’에 대한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는 이유다. 저렴한 전기 요금으로 인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전력난 우려를 키우는 악순환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전기료가 싼 것 자체는 문제가 아닐 수 있지만 원가보다 낮게 공급하면서 수급 구조를 왜곡시킨다면 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전력 수급이 빠듯해진 근본 원인도 공급보다 수요 증가세가 커졌기 때문이고 값싼 전기료가 한몫을 했다는 것.

실제로 한국의 전기요금은 OECD 내에서도 가장 싸다는 지적이다. 우리나라의 전기 사용량의 50%가 넘는 비중을 차지하는 산업부문 전기요금의 기준을 100으로 잡았을 때 미국은 107, 프랑스 183, 영국 209, 일본 266, 이탈리아는 445 수준이다. 발전 자회사가 분리된 11년 전과 비교해 국내 원유가는 3배 비싸졌지만 전력 요금은 15%밖에 오르지 않았다.

박광수 에너지경제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전기요금이 원가보다 지나치게 낮다보니 전기소비를 부추긴다”며 “이는 한전의 재무구조를 악화시켜 결국 국민에게 부담이 떠넘겨질 뿐만 아니라 전력 부족 현상까지 걱정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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