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종현 화백 "나같은 작가가 대한민국에 있는게 자랑스러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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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2-06-18 1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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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립현대미술관서 홍대 출신 첫 회고전 주목..8월 12일까지<br/>한국추상미술 대표작가, 1960년대 ~신작 '이후 접합'까지 85점 전시

일산 작업실에서 하종현화백.

아주경제 박현주 기자='목숨을 걸고 둔다'는 바둑기사 조치훈처럼 그렇게 살아왔다고 했다.

40여년전, 공동화장실을 써야하는 9평짜리 아파트에서 '참을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깨달았다. 날마다 연탄 아궁이에서 나오는 까스때문에 자식들은 아침에 눈을 못뜨고 비틀거렸다.

부인은 "이러다가 우리 가족 다 죽이겠다"고 했지만 그는 전시회에만 온 신경을 썼다. "일본에 있는 이우환에게 부탁해 첫 개인전(1972)을 일본에서 가졌다".

아침에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고, 화가랍시고, 그림그린다고 제대로 보지 않았던 가정. 하지만 그는 화가 이전에 가장이었다. 그 또한 "돈을 한푼이라도 모아 그곳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었다".

그때부터 그는 "가족의 목숨을 담보로 작품"을 해왔다. 때문에 "한국의 근현대미술사를 작품으로 치열하게 싸워왔다"고 자신한다.


한국 추상미술의 지평을 열어온 하종현 화백(77)이다.

"나같은 작가가 아직도 대한민국에 남아있다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일 아니냐. 크하하하하"

언제나 거침없이 말하는 하 화백의 목소리가 더 커졌다. 이유는 당연히 전시 때문이다. 그것도 오랜만에, 홍대출신 작가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열기 때문인 듯도 했다. 그동안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전은 대부분 '서울대' 출신이 차지해 비난의 아우성이 있기도 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올 초 새 관장 취임후 이뤄진 하 화백의 전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인 작품 '접합'처럼 그동안의 소란을 잠재웠다.

'한국 추상미술의 대표작가' 하 화백의 60여년을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이 15일부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대표작 85점이 전시된 작품은 3점만을 빌려왔고 나머지는 모두 그가 소장하고 있는 작품이다. 대부분 200호를 훌쩍 넘는 대작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이순령 학예연구사는 "이번 회고전을 통해 지난 50여년간 한국현대미술계에서 치열하게 작품세계를 일구었던 작가 하종현을 재조명하고, 더 나아가 한국 추상회화가 어떻게 발전하고 이어왔는지 하화백의 작품을 통해 살펴 볼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종현 화백.

그는 대한민국에서 내노라하는 '그림 부자'다. 하 화백은 '팔리지 않는 작품이어서 가지고 있는게 많다"고 하면서도 이번 전시하면서 빌려오지 않고 소장한 작품만으로도 회고전을 너끈히 할수 있어 뿌듯해했다.

현재 가지고 있는 작품만 1000여점. 2007년 경기 일산 서구 가좌동으로 이사하면서는 집 옆에 가건물 4채를 마련 수장고와 작업실 등 용도로 쓰고 있다.

'신주단지 모시듯' 끌어안고 그림을 모셔온 보람을 느끼는 듯 하던 그가 잠시 양 미간을 움츠리며 옛 기억을 재생시켰다.

"술 한잔 먹고 통곡을 한적이 있어요. 일산으로 이사가 작업실을 마련해놓고였지요. 차곡차곡 세워진 그림을 보고 이제야 제대로 그림을 보관하는 구나 싶어 기쁘기도 하고…."

하 화백의 대표작 '접합'시리즈는 제대로 보관을 할수 없는 가난에서 탄생했다.

"어느날 그림을 보니 곰팡이가 나고 삭고 있더라고. 먼지를 털려고 보니까 뒤가 더 멋있더라고."

그 생각은 기존 회화의 고정관념을 깼다. 캔버스 앞에서 물감을 칠한 그림이 아니라 캔버스 뒤에서 물감을 밀어넣는 독창적인 하 화백의 작품이 창조된 것.

이 작품은 1974년부터 2009년까지 35년간이나 계속됐다. 올이 굵은 마포의 뒷 면에서 힘있게 누르면 천의 거칠고 성긴 틈 사이를 통해 앞으로 물감이 배어나온다. 붓질한번 없이, 마대와 물감 손길이 만들어낸 '스리쿠션 미학'이다.

치고 맞고 치고 빠지는 당구공처럼 하 화백의 인생도 화가로서만 머물지 않았다.홍익대 미술대학 교수로 40여년간 재임한 교육자이자, 미술협회 이사장(1989-1989), 베니스 비엔날레 커미셔녀(1988),서울시립미술관장(2001~2006)을 역임한 행정가로도 활동했다.

또 2001년부터 홍익대 퇴임후 받은 퇴직금으로 상금 1000만원의 ‘하종현미술상’을 제정해 후배들에게 상을 주고 있다.

"난 실험적이고 과거에 했던 것을 되풀이 하지않아. 세종대왕처럼 내 의도를 창조해야겠다고 살아왔지."

60년의 화업, 부인은 "알만하면 바꾼다"고 눈총을 줬지만 변화를 시도했다.

"작가가 예술에 몰입할때는 단기적인 결과보다 인생을 통해 그것을 성취하려는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의지였다. "내가 추구하는 변화는 나이를 먹었다고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는 1962년 신상회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면서 앵포르멜 회화작업으로 화단에 등장했다. 이후 1969년에 창립된 한국아방가르드협회장으로 활약하며 실험의 선봉에 섰다. 당시 용수철 철사 철조망등을 사용한 작업을 발표하면서 1970년대를 유린했던 군사정권에 저항했다.

이후 1974년부터 '접합'연작시리즈를 35년간 몰두했지만, 2010년부터 화려하고 현란한 '색 쓰기'에 빠져있다.

"내가 못 해 본 게 뭐 있나 봤더니 색이었어요. 이제 한번 마음대로 써보자."


이전의 작품이 갈색과 회색 등 어두운 색의 물감을 두껍게 채색한 '묵은 된장맛'이라면, 신작은 날색, 원색의 향연이다.

1967년 '탄생','도시계획 백서'에 보였던 콜라주 색채와는 차원이 다르다. 그의 '접합'과 색책가 만나 비집고 나온 화면은 '세상의 모든 색들이 폭발할 듯' 하다

그는 “만선(滿船)의 기쁨”이라 표현했다. 3m, 4m가 넘는 신작 '이후 접합' 앞에서 멜방 청바지를 입고 파안대소를 한 채 사진을 찍은 그는 "이전에 보지 않았던 부분들을 통해 나를 완성시키고 싶다. 내 작업은 지금도 진행중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며 큰소리 떵떵 쳤다.괜히 그러는게 아니다.

이번 전시는 그가 화업을 시작한 1960년대부터 청년화가의 도전적인 실험정신과 열정으로 가득했던 1970년대의 AG(한국아방가르드협회)시절, 그리고 하종현의 독특한 추상회화인 '접합'이 전개되고 정착된 전성기, 그리고 최근의 신작 '이후 접합'에 이르기까지 전 작업, 그의 치열한 인생을 만나 볼수 있다. 평일 오후 2, 4시, 주말 오후 2, 5시 작품설명회가 있다. 7월 18일에는 '하종현과 삼담'이라는 대담회도 열린다. 전시는 8월 12일까지. 관람료 2000원. (02)2188-6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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