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평화롭고 고요한 보스포루스는 터키인들에게 마음의 고향같은 곳이다. |
![]() |
아시아와 유럽을 가르는 관문 보스프루스 해협 |
아주경제 최병일 기자= 터키의 세계적인 문학가인 오르한 파묵(2006년 노벨문학상 수상)은 이스탄불을 관통하는 보스포로스 해협을 보며 “삶이 그렇게 최악일 수는 없어. 여전히 보스포루스로 산책 나갈 수 있으니까”라고 말했다. 터키인들에게 보스포루스는 우리에게 마치 한강과도 같은 의미일지도 모른다. 아시아와 유럽이 보스포루스 해협을 중심으로 갈라지는 이 바다에서 터키 사람들은 지난한 자신들의 삶을 위무받는다. 서글픔과 설움 비애가 섞여 있어도 여전히 보스포루스는 아름답다.
빈부격차가 심하고 다양한 문제를 지니고 있어도 터키인들은 대단히 낙천적이다. 보스포루스 해협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에미뇨뉴 지구에는 터키인들의 진한 삶의 향기가 물씬 풍겨나온다. 해변에는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일광욕을 즐기는 노인들의 모습과 한가롭게 낚시대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고 있는 강태공들의 모습을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결코 삶이 여유로워서 낚시로 세월을 낚는 것은 아니다. 유럽경제의 시름처럼 늘어가는 실업자들의 모습이 만들어낸 서글픈 풍경이다.
해변가에는 수많은 소리들이 섞여 있다. 요란한 버스의 크락션 소리, 트램의 레일 소리, 갈매기의 끼룩거리는 울음소리, 근처 예니사원과 뤼스템 파샤 사원의 에잔(기도문)소리까지 뒤섞여 거대한 화음을 이룬다. 보스포루스 해협에서는 무엇을 굳이 찾아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된다. 그저 눈만 돌려도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기막힌 풍경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고급스러운 건축물도 보이고, 멋진 요트도 정박해 있다. 이스탄불의 대표적인 관광지인 아야소피아, 블루모스크 돌마바흐체 사원들이 조화를 이루며 펼쳐져 있다.
![]() |
들깨가 묻어 있는 대중적인 빵 시미트를 파는 노점상인 |
터키는 냄새조차 남다르다. 거리마다 파는 시미트(들깨가 듬뿍 묻혀져 있는 빵)냄새가 그럴듯하게 콧가를 스미고 지나간다. 군밤 냄새도 빼놓을 수 없는 터키의 냄새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져 있는 케밥은 비단 고기만 싸서 먹는 것이 아니다. 터키에는 무려 수 백종이나 되는 케밥이 있다. 에미뇨뉴 거리에는 고등어를 넣어 만든 고등어 케밥이 일품이다. 마치 세제 냄새와도 같아 처음에는 입에도 잘 못대게 만드는 터키의 전통주 라크향은 강렬하기 이를데 없다.
터키 사람들의 삶의 풍경을 날것 그대로 느끼고 싶다면 시장에 가볼일이다. 터키에는 우리나라 재래시장격인 이집션 바자르와 제법 규모를 갖춘 도매시장인 그랜드 바자르가 있다. 이집트에서 보내온 물건들로 만들어서 이집션 바자르로 불리는 이곳은 무려 350년이 넘는 세월동안 이어져온 유구한 전통을 가진 곳이다. 이집션 바자르의 원래 이름은 스파이스 바자르였다. 원래 향신료를 파는 시장이었던 만큼 시장입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강렬한 향내음이 후두둑 코속으로 빨려들어온다.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면 터키의 젤리나 떡에 해당하는 로쿰의 달짝지근한 냄새가 향긋하게 퍼진다. 로쿰 가게의 상인은 코리아에서 온 손님을 위해 피스타지오가 범벅이 된 로쿰 한 조각을 시식하라며 내놓는다. 한입 베어무니 마카롱만큼은 아니어도 단맛이 아찔할 정도로 강하다.
![]() |
이스탄불 최대의 재래시장 그랜드 바자르는 터키의 향기가 물씬 풍긴다. |
이스탄불만의 색채를 느끼고 싶다면 그랜드바자르를 들러보는 것이 좋다. 유럽과 아시아 교역의 메카였던 만큼 실크로드를 통해 동양에서 건너온 실크와 금 카펫, 향신료 도자기등이 매대 가득 놓여 있다. 시장은 잦은 지진과 화재로 여러차례 파손되었지만 보수를 하면서 오히려 규모가 더욱 커졌다. 시장안에 상점만 무려 5000여개 출입구만 20개가 넘는 엄청난 규모로 자칫하면 미로에 갖혀버리고 만다. 재래시장이라고 하지만 도자기나 카페트는 그리 만만한 가격이 아니다. 작고 앙증맞은 도자기 하나를 집어 들고 가격을 물어보니 무려 1000리라(우리 돈 65만원). 카페트는 우리 돈으로 몇 억이 넘는 물건도 있다고 한다.
![]() |
어디나 아이들은 천진하다. 마치 모델같은 포즈를 하고 있는 모습이 앙증맞다 |
![]() |
보스포루스 해협을 배경으로 웨딩사진을 찍고 있는 신랑신부의 모습 |
이스탄불의 뒷골목을 느끼고 싶다면 탁심거리를 걸어보는 것이 좋다.새벽녘 탁심거리는 제법 을씨년 스럽다. 밤새 노숙을 한 듯한 터키인이 언몸을 부여잡고 언덕을 올라가는 모습은 애처롭기만 하다. 마치 우리나라의 연립을 연상케 하는 골목 어귀에는 아이들이 무리지어 놀고 있다. 히잡을 쓴 아이와 청바지를 입고 있는 아이가 서로 겅중거리며 뛰어노는 모습은 이채롭다. 새벽이면 빵장수가 다니면서 빵을 판다. 2층이나 3층에 위치한 터키인들은 마치 도르래 같은 바구니를 내리고 빵장수는 빵을 바구니속에 넣어준다. 그렇게 아침에 시작된다.
![]() |
여유롭게 터키전통차를 마시는 이에서 구걸하는 이까지 노천카페에 가면 터키인의 모든 것이 보인다 |
탁심은 낮의 풍경도 좋지만 서서히 땅거미가 깔리기 시작하면 터키인들의 날것같은 삶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난다. 노천카페마다 사람들이 차고 넘친다. 어떤 이는 터키커피를 마시며 빈 테이블을 바라보고 있고 또 어떤이는 아이를 데리고 나와 손풍금으로 열심히 연주를 하며 구걸을 하고 있다. 또 어떤이는 물 담배 연기를 뿜어대며 연신 깔깔대고 있다. 터키 맥주인 에페소 한잔을 마시며 보드게임인 타울라를 여유롭게 즐기는 모습이 곳곳에서 눈에 띈다.
![]() |
터키의 한류팬들은 수십만이 넘는다. 이스탄불 대표 팬클럽 AK의 터키 팬들. |
터키인들의 일상은 마치 한국인들의 삶을 투영하는 것 같다. 술과 노래를 좋아하고 깊은 정을 가진 터키인들은 실제로 한국인들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한국전쟁당시 1개 여단인 1만 5500여명을 파병하여 우리를 도와준 이들이 바로 터키인들이다. 피로 맺어진 형제국가라는 의미때문인지 한국인들에게는 기분좋은 환대를 마다하지 않는다. 터키인들이 한류에 열광하는 것도 그때문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터키에는 수 십 만명이 넘는 한류팬들이 존재한다. 이스탄불에서 가장 큰 한류팬클럽만 회원수가 무려 5만명, 코리아 팬클럽 KF(Korea Fans)의 히림 케세넥 씨는 “터키인들이 한국의 K팝을 통해 한국에 대해 호감을 가졌는데 요즘에는 한국의 문화와 예술까지 좋아하게 되었다”고 했다. 이스탄불대학을 다니는 사이긴은 한국이 좋아서 우리말을 공부했고 이제는 서슴치 않고 농담까지 주고 받을 정도가 되었다.
이런 이유로 최근 한국관광공사는 터키에 이스탄불지사를 개소했다. 권창근 이스탄불 지사는 권창근 이스탄불 지사장은 “터키는 그리스, 불가리아 등 남유럽뿐 아니라 이란, 이라크, 시리아 등 성장 잠재력을 갖춘 아랍권 관광시장의 허브가 될 수 있는 곳”이라며 이스탄불의 중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 |
세상이 온통 타버릴듯한 강렬한 보스포루스해협 황혼 |
이스탄불의 대미는 무엇보다 보스포루스 해협의 황혼이다. 블루모스크와 아야소피아에 불빛이 켜지고 차곡차곡 거리를 점령한 어둠. 마치 루미나리에 처럼 도시는 거대한 불빛의 향연이 펼쳐진다. 뱃 고동소리가 애잔하게 해협을 넘어 마르마라 해협쪽으로 사라지면 이스탄불은 오래된 기억을 하나씩 날개밑에 감추고 어둠속으로 숨어든다.
©'5개국어 글로벌 경제신문' 아주경제.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