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황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으나 은행권은 대출 문턱을 이전보다 더욱 높이겠다는 입장이다. 비올 때 우산 뺏는 형국이다.
한국은행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을 제외한 국내 16개 은행을 대상으로 조사해 4일 발표한 ‘금융기관 대출행태 서베이 결과’에 따르면, 4분기 가계와 기업을 포함한 신용위험지수는 38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9년 1분기(38)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의 신용위험지수는 38로 카드 사태(2003년 3분기, 44) 이후 무려 9년 3개월만에 가장 높았다. 상승폭으로도 10년만에 가장 크게 오른 수치다.
한은 거시건전성 분석국의 관계자는 "가계의 경우 집값이 장기적으로 하락하는 가운데 경기둔화에 따른 소득감소 등으로 다중채무자 등 취약계층의 채무상환능력에 대한 우려가 심화됐다”면서 “또한 기업은 대외여건의 불확실성에 따라 수출 모멘텀 악화, 내수부진 및 수익성 저조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상황이 이러한데 은행권의 대출 문턱은 예전에 비해 더욱 높아지는 추세다.
4분기 국내은행의 중소기업 대출태도지수는 전분기보다 3포인트 떨어진 3을 기록했다. 2년 6개월만에 가장 낮다. 은행들이 그만큼 대출영업에 소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미다.
이 지수는 기준치가 0으로 100과 -100 사이에 분포하며, 지수가 높을수록 은행들이 대출영업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뜻이다.
가계 일반자금에 대한 대출태도 역시 채무상환능력이 떨어지는 점 등을 감안해 전분기보다 3포인트 하락한 3으로 조사됐다.
한은 관계자는 “카드 사태나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은행들의 대출태도지수가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점을 감안하면, 4분기에는 은행들이 높아진 신용위험에 비해 양호한 대출영업을 하겠다는 의미”라며 “실직 등의 소득감소 요인이 없는 데다 여전히 경상수지가 흑자를 기록하는 점 등으로 은행들이 대출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기업과 가계로서는 은행들이 대출문을 죈다는 사실이 달갑지 않다.
한은이 정성호 민주통합당 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14개 은행의 8월말 현재 법인기업의 연체액(이자 포함)은 8조5000억원으로 한 달 새 1조원(13.1%)이 불었다.
웅진그룹은 극동건설이 부동산 경기 악화로 부실이 커진 데 따라 결국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대기업에 비해 자금조달이 어려운 중소기업에게 부실의 공포는 점차 커지고 있다.
서정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리스크가 높아진 상황에서 은행들이 대출태도를 강화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면서도 "대출 수요의 빠르게 커진 것을 감안하면 은행의 대출 완화 속도는 여기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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