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 1월 아주중국> 중국어로 세상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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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1-03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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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팍스시니카’의 총아 위안화

‘환율전쟁’이라는 말이 다시 지구촌 경제무대를 달구고 있다. 마오쩌둥(毛澤東)과 조지 워싱턴을 주전 선수로 하는 중국-미국 간의 환율전쟁은 단시일에 끝날 싸움이 아니다. 마오의 홍비(紅幣, 위안화)와 워싱턴의 그린백(Gree nback) 간의 전쟁은 이제 막 길고 지루한 전쟁의 서 막을 올린 것인지도 모른다. 중국과 미국 모두 지독한 패러독스를 내뿜으며 모순으로 가득 찬 쟁론에 도취해 있는 듯하다. 미국은 무엇이든 다 꿰뚫을 수 있는 창으로 중국을 겨누고, 중국은 어떤 날 선 창도 다 막을 수 있는 방패를 가지고 미국을 상대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 홍비(위안) 대 그린백(달러)의 환율대전
미국과 일본, 중국과 아시아, 유럽 등 세계 주요국들이 뒤섞여 벌이는 환율전쟁은 영토전쟁 이상으로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전쟁의 하이라이트는 이른바 G2의 일원인 미국과 중국 두 나라가 벌이는 공방전이다. 미국은 중국이 원인제공자라며 환율전쟁의 책임을 모두 중국 측에 전가하고 있다. 중국이 고환율(위안화 저평가)에 기댄 수출활동으로 막대한 흑자를 거둬 세계경제의 불균형을 초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미국 의회는 중국 당국이 위안화 가치를 인위적으로 떨어뜨리고 있다며 중국을 상대로 환율 조작 대응 법안 입법을 경고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이미 두 차례에 걸친 환율전쟁에서 일본과 독일을 모두 녹다운시킨 미국은 최근 들어 달러 유동성을 대량 공급(대량의 달러 발행)하는 양적완화를 통해 대대적인 경기 부양을 꾀하고 있다. 2012년 12월 중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벤 버냉키 의장은 미국은 2013년 장기 국채매입으로 시중 자금을 더 풀고 고용시장 개선 신호가 보일 때까지 제로금리를 유지할 것이라며 추가 양적완화 계획을 밝혔다.

환율하락(자국 화폐가치 상승)에 따른 수출경쟁력 악화를 감수해야 하는 미국의 무역 상대국들은 이를 두고 ‘버냉키의 환율총탄’이라는 지탄을 쏟아내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세계 기축통화인 달러를 마구 찍어내는 이른바 양적완화를 통해 인플레 압력을 가중시키는 것은 물론 세계경제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마치 치킨 케임이라도 벌이듯 피차간 한 치의 양보가 없다. 가히 3차 환율대전을 방불케 하고 있다. 지난 2010년 서울 G20 정상회담에서도 장내외에서 G2 간에 펼쳐진 환율공방이 최대 이슈가 됐다.

미국이 거세게 압박하고 있지만 훌쩍 G2로 성장해버린 중국의 반격도 만만치 않다. “일본 엔화는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2년 6개월 만에 달러당 260엔대에서 120엔대로 두 배나 상승했다. 하지만 미국이 기대했던 대일 무역역조는 개선되지 않았다. 중국의 위안화 절상도 미국의 대중 역조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해줄 수 없을 것이다. 미국 무역적자의 근본적인 원인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미국의 환율공세가 거세질 때 저우샤오촨(周小川) 인민은행장(중앙은행)을 비롯한 중국 관리와 민간학자들이 똘똘 뭉쳐 앵무새처럼 읊어대는 얘기다.

필자가 2010년 10월 15일 서울 워커힐호텔에서 중국의 《화폐전쟁》 저자 쑹훙빙(宋鴻兵)을 인터뷰했을 때 그는 2년여 전인 2008년 가을 베이징의 한 대형서점이 개최한 특강에서 만났을 때와 변함없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중국 위안화의 가파른 절상은 주요국 경제를 급격히 냉각시켜 글로벌 경제를 공멸에 처하게 할 것이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위안화 절상 요구가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지만 중국은 스스로 정한 합리적인 수준의 완만한 절상 방침에서 한발도 물러서지 않고 있다. 중국은 2005년 7월 관리변동환율제로 전환한 이후 일관되게 이런 원칙을 고수해왔다. 달러에 대한 위안화가치는 중국의 점진적 절상 방침에 따라 6년간 대략 20% 이상 상승했다.

2010년 10월 27일 천더밍(陳德銘) 중국 상무부 부장(장관)은 과도한 달러 발행이 글로벌 금융자산 인플레를 유발하고 있다며 미국을 맹비난했다. 오히려 미국의 사리사욕이 세계경제를 수렁으로 몰아넣고, 세계 인민들에게 물가상승의 고통을 안겨주고 있다고 중국은 반박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학자들은 화폐전쟁이니 환율전쟁이니 하는 소리도 모두 어폐가 있는 얘기라고 주장한다.

기축통화인 달러를 발행하는 미국의 ‘화력’에 대항할 나라가 어디 있다고 전쟁 운운하냐는 지적이다. 미국 외에 다른 나라들은 그저 달러가치 하락에 따른 환율방어에 급급할 뿐이라는 것이다. 중국 학자들은 이 정도면 전쟁이라기보다 일방적인 미국의 약탈이라고 해야 맞는 얘기 아니냐고 목청을 돋운다.

미국에 대한 반격의 논리적 근거는 다음과 같다. “미국은 달러를 무기로 한 기축통화 패권국으로서 케인스주의 통화정책을 유지함으로써 국내 투자와 소비가 생산능력을 초과하는 상황에 노출돼왔다. 저축 부족에 국제수지가 적자인 상황에서 달러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세계 각국의 상품과 노무를 수탈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기축통화인 달러를 남발하는 미국의 양적완화에 대해 중국은 못내 심기가 불편하다.

2011년 6월 현재 중국의 외환보유액은 3조 2000억 달러에 달했다. 이중 71%가 달러자산이다. 같은 기간 중국이 보유한 미국 국채도 1조 1600억 달러로 1조 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미국 돈인 달러 외환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고 미 국채도 제일 많이 투자하고 있는 중국으로서 당연히 가지게 되는 불만인 것이다.

실제 중국이 억지주장을 늘어놓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중국은 위안화 안정을 통해 국제금융시장 안정에 기여한 측면이 있다. 또한 위안화 환율 안정은 중국수출품 가격을 20년이나 붙들어 매놔 글로벌 물가 안정에 일정정도 공헌을 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문가 지적대로 위안화가 갑작스럽게 대폭 절상된다면 글로벌 소비자들이 누려온 이런 가격 메리트는 단번에 소멸될지 모른다.

환율전쟁의 큰 원인 중 하나인 중국의 생산 과잉과 미국의 소비투자 부족 현상은 하루아침에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은 세계경제의 구조조정 결과와 기술진보에 따라 어떤 방향으로든 또다시 변할 게 틀림없다. 미국은 달러 의존만으로 생존할 수 없고, 중국도 언제까지나 자국 통화가치를 인위적으로 낮게 유지하는 고환율 정책에 기반을 둔 만년 흑자국으로 유유자적할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 지구촌 통화 ‘런민비’의 어제와 오늘
중국 화폐 위안화의 공식 명칭은 ‘런민비’다. ‘인민의 돈’이라는 뜻이다. 권력은 총구에서 나오고, 총구에서 나온 권력은 공산당이 장악하고 있지만, 재화는 인민들의 수중에 있고 그 재화로서 인민들을 행복하게 해주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돈의 주인이 더 이상 봉건시대 황제가 아닌 일반 라오바이싱이라는 선언인 셈이다. 중국의 위안화는 어떤 면에서 혁명화폐라고 할 수 있다.

위안화는 연륜에 있어 미국 달러에 비해 비교가 안 되는 신생 통화다. 하지만 이제 서른을 갓 넘긴 중국의 시장경제에 비해선 역사가 곱절이나 이르다. 중국공산당은 내전 말기 1948년 12월 허베이(河北)성 스자좡(石家庄)에서 중앙은행격인 런민(人民)은행을 발족해 현재의 위안화인 통일화폐 런민비를 처음 발행했다.

이 첫 위안화는 세계의 화폐 소장가들이 가장 욕심내는 통화로 꼽히고 있다. 당시 위안화는 5만, 1만, 5000, 1000, 500, 100위안권 등 고액권으로 발행됐으며 이 화폐는 1955년 구화폐와 1 대 1만의 교환비율로 통화개혁을 맞는다. 이후 30여 년간 10위안짜리가 고액권으로 통용됐으며 1987년 50위안권과 100위안권 런민비가 발행된다. 1999년 5차의 신권 발행으로 이들 고액권 통화는 현재 모습으로 문양이 바뀌었다.

일각에서는 공산당 창당 초기인 1924~1927년 해방구를 중심으로 ‘인민화폐’가 사용됐다며 이때 이미 위안화가 싹을 틔웠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국민당 장제스 군대와의 내전 시기 중화소비에트공화국은 1932년 중앙은행격인 국가은행을 설립하고 마오쩌둥의 친동생 마오쩌민(毛澤民)을 초대 행장에 앉히기도 했다.

학자들 중에는 위안화의 원조인 중국 화폐의 기원을 3000여 년 전 고왕조 시대로 잡는 이들도 있다. 중국 톈안먼 광장 서편 골목에는 근대식 3층으로 된 ‘첸비(화폐)’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서울 소공동에 있는 우리의 한국은행 화폐박물관과 똑같은 곳이다. 여기에 가면 고대 상(商)나라 때부터 현재의 위안화까지 중국 돈의 역사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원시사회의 조개 돈과 청동 괘돈, 기원전 770년 춘추시대 뾰족삽 모양의 청동 ‘푸비(布幣)’, 전국시대의 ‘다오비(刀幣)’와 황토 주조틀이 눈길을 끈다.

1층 전시실엔 진(秦) 왕조의 시황제가 기원전 221년 통일왕조를 세운 뒤 ‘팡궁위안(方孔圓, 주변이 둥글고 가운데가 네모로 패인 모양)’형의 동전을 주조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팡궁위안이라는 이 동전은 이후 2000여 년간 화폐의 모양새를 결정해왔다. 이곳 안내원은 “친왕조의 돈은 ‘반량첸(半兩錢)’이라 해서 무게로 단위를 표시했다”며 이때부터 위안화와 같은 통일적 단위의 화폐운영이 이뤄졌다고 설명한다.

서한 때는 경제성장으로 화폐 사용이 급증하면서 ‘우주첸(五銖錢)’이 선을 보이고 중앙정부가 중앙은행과 유사한 기구를 통해 화폐를 통일적으로 주조, 관리했다. 이 시기 실크로드를 통해 서역과의 교역이 번성하면서 중국 최초로 러우란(樓蘭)국, 위전국 등의 ‘외환’이 통용됐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한 당, 송, 명 때에 와서는 액면 자체를 중시하는 계수화폐와 지폐 등이 등장하고 청대에는 일종의 어음인 관표와 은화 등이 발행됐음을 베이징의 화폐 박물관은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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