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고교생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읽고 이문열에 던진 돌직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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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3-08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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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초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했나요?","한병태의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을 지지해주지 않나요?", "출판 후 문제가 되지는 않았나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1987)'을 쓴 소설가 이문열(64)씨를 만난 미국 고등학
생들이 쏟아놓는 질문은 끝이 없었다. 

이씨는 7일(현지시간) 시카고 북서 교외에 있는 레이크포리스트 아카데미(고등
학교)에서 10학년(한국 고등학교 1학년) 3개 반 학생들과 45분씩 토론 수업을 하면서 작가 지망생들과의 점심, 그룹 질의·응답 시간 등을 가졌다. 

이 학교 영어교사 3명은 이번 학기 교재 중 하나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영문 제목 Our Twisted Hero)을 채택했다. 

영어교사 로렌 켈리는 "정치적·사회적 이슈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글이 잘 읽히
고, 학교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한국의 문화적 요소가 들어 있지만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고 친숙하면서도 동시에 국제적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작가가 쓴 글을 읽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평가했다.

학생들은 "왜 초등학생들을 주인공으로 글을 썼나, 자전적 소설인가"를 먼저 물
었다.

이씨는 "어른 세상의 복잡한 조건들을 개입시키지 않고 단순화하기 위해 초등학교 교실로 이야기를 압축시켰다. 하지만 이 작품은 권력과 지식인의 관계를 말하는 소위 '어른들을 위한 동화'"라고 설명했다. 이어 "내 어릴 적 추억도 일부 포함되어있으나 자전적 소설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조던 월프(16)는 "한병태의 아버지는 어째서 아들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거나 지
지하지 않는가 의아했다"며 "미국 문화에서 아버지는 자녀양육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반면 병태 아버지는 그와 상반된 모습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960년대 한국의 아버지상을 이해하기 어려웠다는 말이다. 

월프는 "작가를 직접 만나 작품 배경을 설명 듣고 나니 이해가 된다"면서 "한국
의 문화와 정치 형태가 차츰 어떻게 변화했는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소피 핸슨(16)은 "1960년대 한국을 배경으로 쓰였지만 지금 미국 학교에서도 일어나는 일이고 우리가 경험하는 일"이라며 "작가를 직접 만나게 돼 너무나 기쁘다"고 반색했다.

"혹시 출판 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았나"라는 핸슨의 질문에 이씨는 "소
설의 배경과 다른 시대에 책이 나와 그런 일은 없었다. 그리고 시대가 지난 후 외려'어정쩡한 입장으로 힘없이 책을 썼다'는 지적을 받기도 했다"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학생들은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Animal Farm,194
5)과 비교했고 이씨는 "윌리엄 골딩의 '파리대왕'(Lord of the Flies, 1954), 독일
작가 귄터 그라스의 '고양이와 쥐'(Katz und Maus,1961) 등과 비교하는 사람들도 있다"며 "그건 알레고리 소설의 숙명"이라고 해석했다.

점심때 도서관에서 열린 그룹 팬 미팅에는 80여 명의 학생이 자율적으로 모여
작가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일부 학생들은 이씨로부터 사인을 받거나 사진을 같이 찍으려고 줄을 늘어서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이씨는 "35년 동안 작가생활을 하면서 25편의 장편과 60편의 중·
단편소설을 썼다"며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은 중편소설에 속한다"고 덧붙였다.

"이 작품이 대표작인가 아니면 어느 작품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가"라는 질문에 이씨는 "작품 하나하나가 모두 자식 같다. 어느 하나를 가장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고 답하자 학생들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이씨는 학생들의 독촉에 '사람의 아들'(1979), '황제를 위하여'(2001), '시인'(1991) 등을 꼽았다.

작가 지망생 학생들이 글쓰기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이씨는 "근본적인 문제에 의문을 가져라. 눈에 보이지 않아도 실존하는 것들이 많다"면서 "본질적인 것, 변하지 않는 것, 관념적인 것들을 추구하라. 여기에 긴 생명력이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은 이미지가 본질이고 보는 것이 전부인 듯한 세상이 됐다. 작가들도
비주얼과 이미지에 의존한 글쓰기를 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이어 "독자를 가르치고 교훈 주려는 것을 피하고 이야기 속에서 독자 스스로 답
을 찾아가도록 해야 한다"고 귀띔했다. 

존 수트러드윅 교장은 별도 면담에서 이씨에게 "번역과정에서 의도한 바가 모두정확히 전달됐는가"라고 물었다. 영국 출신이라는 그는 "영국과 미국은 같은 영어를 사용하지만 영국인의 말뜻을 미국인들이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며 번역 작품이 독자들에게 공감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임을 강조했다.
학생들은 책을 읽고 난 후 일리노이 한인들이 한국 문화유산에 대한 인식과 이
해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한 비영리 문화단체 '세종문화회'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에세이 공모에도 참여했다. 

이문열씨의 이번 시카고 방문은 세종문화회 초청 형식으로 성사됐다. 이씨는 "
나는 한국 문학의 한 부분이다. 한국 문학과 한국 문화를 알리기 위한 길이라고 생각해 오게 됐다"고 소개했다.

그는 "10년 전부터 두어 차례 미국 고등학생 독자들과 만나 질의·응답시간을
가졌지만 직접 수업시간에 참여한 것은 처음이다. 가까이에서 진솔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아주 새로운 경험이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8일에는 어바나-샴페인에 있는 일리노이대학에서 '세계화 시대의 한국문학', '미국에서의 한국문학 출판' 등을 주제로 심포지엄을 하고 9일에는 시카고 한인들을 대상으로 '이문열 문학 콘서트'를 연다./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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