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의 아트톡>조각가 존배“즉흥연주하듯 탄생한 철사조각..용접부터 홀로 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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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3-05-01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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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8일 사간동 갤러리현대서 7년만에 개인전‘기억의 은신처' 20점 전시

재미 작가 존배./사진=갤러리현대 제공.

아주경제 박현주기자=“돌은 깎아야하고 나무도 잘라야 하지만 철은 버리는게 없어요. 그림그리는 것처럼 쉽게 시작할수 있어요."

철사를 이어붙여 작업하는 재미 조각가 존배(76)의 작품은 철사의 생명의 살린 즐거운 파격이다.

“철사는 비싸지 않고 튼튼하지만 녹이 슬어 사라져버릴 수 있다는 점에서 생명체와도 같은 느낌이라 마음에 들어요."

가느다란 철사는 거미줄 같은 탄력성과 기하학적이면서도 유연히 돌아가는 느긋한 곡선의 아름다움이 진동한다. 2m가 넘는 '선택,선택'등 그의 작품은 드글드글 얼키고설킨 철사들이 허공을 잠식한다. 세워진게 신기할 정도로 자꾸만 더 뻗어나갈 것만같은 공감각적 환각도 느껴진다.

작은 정사각형이나 반원 같은 한 단위에서부터 시작된다. 정사각형에 또 다른 정사각형을 더하다 보면 어느새 새로운 형태가 만들어지고 작품이 완성되는 식이다. '정밀함과 무작위의 혼돈'. 사방에서 보면 볼수록 모습을 달리한다.

28일 서울 사간동 갤러리현대 전시장에서 작가를 만났다. 2년만에 한국에 왔다며 활짝 웃는 그는 건강해보였다.

존배는 열두 살이던 1949년 일본강점기 농촌 계몽운동을 했던 독립운동가인 아버지 배민수 씨와 러시아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은 어머니 최순옥 여사를 따라 미국으로 건너갔다.
Choices, Choices(선택, 선택), 2012, welded steel, 238.7(h)x81.2x66cm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그의 부모는 어린 아들을 미국에 두고 구호 활동을 한다며 귀국했고 존배는 미국에 남았다. 홀로 남겨진 존배는 백인 또래들의 텃새틈에 소외당하지 않게 각종 운동을 섭렵했다. 당시 뉴욕시티 발레와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에 매료돼 4년간 무용을 배우며 모던 댄스그룹, 볼쇼이 발레단을 체험하기도 했다. 하지만 2살때부터 그림을 그려운 그는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14세에 미국서 개인전을 가질 정도로 재능이 있었지만 대학에 진학할 형편이 못됐다. 그러나 뉴욕 프랫인스티튜트에서 4년 장학금을 제안했고 이때부터 프랫과 인연이 시작됐다. 페인팅에서 조각으로 전환한 존배는 매일 밤 늦도록 만들고 부수기를 반복했다. 존배의 열정에 담당교수는 사무실 키를 맡기며 작업을 계속할 수 있도록 배려했다.프랫 대학원까지 장학금으로 졸업한 그는 27세였던 1965년 프랫인스티튜트 조각과 최연소 학과장에 올라 30여년간 후학을 양성하다 지금은 프랫인스티튜트 명예 교수로 재직 중이다.

지난 2006년 갤러리현대에서 개인전 이후 한국에서 7년만에 연 이번 개인전에서는 2008년부터 최근까지 작업한 신작 20여점을 선보인다.

이번 전시제목 '기억의 은신처'는 어느날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습관처럼 익숙한 기억이 사실은 그것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문득 깨달으면서 나왔다.

그는 "기억이란 사람들의 본능적인 은신처로 불안한 상태이긴 하지만 이 기억들의 상태가 살아 숨쉬는 생명체와 같이 생각되어 놀랍고 흥미롭다"고 했다.
유한한 공간에서 길을 잃다, 2011, welded steel, 132(h)x116.8x88.9cm

76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고 있는 작가는 "자신에게 예술적 영감, 감성의 자양분과 삶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아티스트는 바흐"라고 꼽는다.

작업할 땐 항상 바흐 음악을 듣는다는 그의 작품은 동양의 명상과 서양의 리듬이 결합한 즉흥연주다.

수학으로는 할수 없는 작업, 밑그림을 그리고 작업하는지 물었다.

"용접작업이 드로잉과 비슷해서 드로잉은 안하게됩니다. 용접 불이 마치 붓 같아요. 철사를 붙이고 뗄수도 있고, 딴딴하게 녹아서 말랑말랑해지기도 하고, 불꽃으로 그림 그리듯 합니다."

일흔이 넘은 나이. 아직도 직접 용접을 하고 작품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반복하는 그는 재료 선택부터 용접 마무리까지 전 과정을 홀로 해내고 있다.

옆에 있던 부인은 "이 사람 손이 병신이에요"라며 충격적인 말로 거들었다. "하루에 꼬박 10시간씩 작업에 매달리고 어떤 작품은 2~3년 걸리기도 해요. 그러니 손이 온전하겠어요."

"직업병이죠. 오른손이 마비된 적도 있고 지금도 아파요."

그는 "매 순간 우연한 결정에 따라 형태가 정해지기 때문에 나 자신도 작업이 어떻게 진행될지 모르는데 남에게 지시할 수도 없다"고 말했다.

붙이고 떼고 이어붙이기를 반복하는 과정속에 작품이 얼마나 커질지, 언제 어느 지점에서 끝이 날지 자신도 짐작 못한다는 것.

"그래서 작가로서 제가 직접 작업을 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결과물 자체보다 내가 직접 작업을 하는 그 과정들이 더 중요하다고 느껴요. 작가 자신의 끝없는 의식과 무의식적 결정과 선택은 누구도 대신해 줄수없는 과정이어든요. 작업안에서 어떤 선택과 결정을 하느냐가 그 작가를 정의한다고 생각합니다."

'철 무지개' '믿음의 도약' '모서리에서부터' '간단한 논리' '선택, 선택'. 작품 제목은 그의 생각과 우연이 낳은 결과물을 묘사한다.

4월 3일 수요일 오후 3시에는 작가에게 직접 작품 세계를 듣는 아티스트 토크도 열린다. 전시는 4월 25일까지. (02)2287-3500.
간단한 논리, 2012, welded steel, 114.3(h)x58.4x50.8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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