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적 관심이 모아졌던 만큼 사업 무산에 따른 후폭풍도 만만찮다. 회복 기미를 보이던 부동산시장에 큰 부담을 지웠다는 비난도 피할 수 없게 됐다. 고종완 한국자산관리연구원장은 "용산 개발사업이 청산 절차에 들어가면서 시장 회복 기대감에 꿈틀대던 부동산 수요자들의 매수심리에도 찬물을 끼얹을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국내 대표적 공모형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사업이 실패로 일단락되면서 국내 개발형 사업의 리스크(위험) 대응 능력도 도마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용산 개발은 사업이 처음 진행됐을 때부터 무리가 있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사업이 추진되던 2007년은 부동산시장이 호황기로 개발에 대한 기대감이 극에 달하선 때이다. 사업 부지인 철도정비창 땅값은 개발 기대감에 8000억원대에서 10배 가량인 8조원까지 치솟기도 했다.
반면 사업 시행사인 드림허브프로젝트금융투자(이하 드림허브)의 초기 자본금은 1조원으로 사업비 31조원의 3.77% 가량에 불과했다. 막연히 사업이 잘 될 것이란 기대감으로 충분한 자기자본을 갖추지도 않은 채 사업에 뛰어든 것이다. 이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으며 자금난에 시달렸고, 결국 지난달에는 자산담보부기업어음(ABCP)에 대한 이자 52억원을 내지 못해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을 맞았다.
사업 당사자인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는 용산 개발사업 무산에 대한 책임 소재를 놓고 치열한 공방을 전개할 가능성이 크다. 양측은 사업이 최종 무산되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롯데관광개발 등 민간 출자사 측은 코레일이 대주주로서 사업에 대한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드림허브 관계자는 "코레일이 독소조항이 들어간 정상화 방안을 합의하라고 종용했다"고 말했다.
코레일은 삼성물산이 대주주 지위를 반납한 후 사실상 모든 사업을 주도해왔는데 투자사들이 투자도 하지 않고 코레일의 희생만을 바란다고 반박했다. 코레일 관계자는 "민간 출자사들은 수차례 요구한 CB 2500억원 발행도 지키지 못했다"며 "민간 출자사들이 공기업으로서 책임만 요구하고 함께 투자하지 않는다면 합의 여지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최대 주주로 사업을 추진했던 삼성물산도 책임 소재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도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 들어 코레일의 증자 요구도 거부했고, 사업부지 토지 정화사업과 폐기물 처리 등에 대한 미수금 271억원을 받기 위해 코레일이 제안한 사업 정상화 방안에 동의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코레일이 사업을 청산하기로 하면서 당초 돌려받기로 한 투자금 688억원까지 허공에 날릴 가능성이 커져 돈과 명분 모두를 잃을 상황에 놓였다.
삼성물산과 함께 많게는 100억~200억원에서 수십억원의 투자금을 날리게 된 다른 민간 출자사들은 투자를 주도했던 경영진까지 사업 실패에 따른 책임에 압박을 받고 있는 모양새다.
국토부도 사업 무산의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하기관인 코레일이 사업을 주도한데다 공모형 PF 정상화를 추진 중이기 때문이다. 드림허브도 9일 국토부에 공모형 PF 조정을 신청하면서 국토부가 용산 개발사업에 개입해주길 기대하고 있다.
서울시는 서부이촌동 주민들에게서 집중적인 비난의 화살을 맞고 있다. 서울시가 2007년 서부이촌동을 사업 구역에 편입시켜 6년여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됐었는데 사업 무산 과정에서 사실상 주민들을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못해서다. 서부이촌동을 사업지에 편입시키지 않았어도 보상에 대한 부담감이 줄어 사업 추진에 속도가 붙었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두성규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용산 개발사업 무산은 국내 공모형 PF가 얼마나 리스크 관리에 취약한 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며 "코레일과 민간 출자사, 서울시 등은 너무나 비싼 수업료를 지불한 셈이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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