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아트를 창립한 서울옥션 이호재회장이 30년전 파리에서 만난 '군상 시리즈' 고암 이응노화백과 인연을 이야기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아주경제 박현주기자="한국에서 내 작품을 없애기위해 온 공작원이냐"
파리에 있던 고암 이응노화백(1904~1989)을 만나러간 그는 당황했다. "젊은데, 진짜 화랑하는 사람이 맞냐"며 고암은 의심을 풀지 않았다. 프랑스에서 작업하던 고암은 월북한 아들 문제 때문에 북한 공작원과 만났다가 박정희 정권에 호되게 당해 프랑스에 귀화해버린 작가다.
이화백은 '이응노 작품이 없어지면 이응노가 없어지는 것'이라며 작품을 애지중지했다. 세번째로 찾아가 다시 만난 고암의 그림 '인물 군상'앞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걸 본 고암은 '화랑하는 사람이 맞구나'며 마음을 풀었고 '군상'(137X208cm)을 내주었다.
"새파랗게 젊은 사람이 화랑을 한다며 작품을 보자고 하니 '고국에 발도 못 붙이게 하더니 작품마저 다 없애려고 이젠 중앙정보부 공작원까지 보냈구나'라고 강하게 의심할 수밖에요."
그때가 1985년이었다. 젊은 화상은 현재 서울옥션 이호재(59)회장. 귀국후 '빨갱이 작가'라며 외면하고 위험하다고 여겼던 고암의 전시를 추진했다.
"작품이 너무 좋았어요. 일단 국내에 빨리 소개해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죠."
1989년 1월 10일 호암미술관에서 국내 복귀전이 진행됐다. "그날 오시기로했는데 못오셨죠. 그게 마지막 전시가 됐어요." 전시개막 테이프 커팅이 이뤄질때 파리에 있던 고암은 "몸이 노곤하니 잠시 누워있어야겠다"며 잠이든채 그대로 돌아가셨다. 그때 고암의 '군상 시리즈'는 고국에서 새 생명을 얻고 있었다.
가나아트센터 30주년에 전시된 박대성화백의 그림을 한 관람객이 감상하고 있다./사진=박현주기자 |
30년전 서울 관훈동의 한 건물 2층 작은 공간에서 출발한 가나아트가 올해 개관 30주년을 맞았다. 26세때 고려화랑에서 화랑직원으로 근무했던 이호재회장이 '돈이 좀 벌릴 것'같아서 무작정 차린 화랑이다. '(한글의)처음'이라는 의미로 가나다라에서 따온 '가나화랑'으로 이름을 지었다.
당시 '가나 화랑'은 작가들에게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땅처럼 미술시장에 힘을 불어넣었다.
개관 이래 국내외에서 600회 이상의 전시를 기획했고 1984년부터 전속작가제도를 도입해 작가들이 안정적인 환경에서 작업에 매진할 수 있도록 지원해왔다.
'미술한류'의 원조다. 1996년부터 파리 시떼 데자르에 한국작가 입주공간을 마련해 창작공간을 제공해왔다.
2001년 평창 아틀리에를 시작으로 점차 규모를 확장해 2006년부터 장흥아틀리에에 60여명의 작가가 입주한 창작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배병우의 사진이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곳도, 사진작가 김아타의 대표작 ‘온-에어 프로젝트’가 탄생한 곳도 '가나'에서다.
사석원이 용달차에 싣고 온 그림을 사서 아직도 소장하고 있는 이호재 회장이 사석원의 그때 그 그림앞에서 사석원의 용기에 대해 이야기했다./사진=박현주기자 |
다른 화랑 작가들이 교수로 이동하는 것에 비해 '가나 작가'들은 전업작가들이 많은게 특징이다.
미술시장 인기작가로 등극해있는 화가 사석원(53)은 이호재회장을 '중매쟁이'로 여기며 식구처럼 지낸다. 28세때 생활고에 시달리던 그는 그림을 용달차에 싣고 당시 인사동 가나화랑을 찾아갔다. 파리유학시절 가나화랑이 파리에서 전시하는 것을 보고 '이 화랑이면 내 궁핍한 생활에 도움을 줄수 있겠'싶어 무작정 '그림을 사달라'며 그림을 놓고 왔고 이 회장은 가져간 10점의 그림을 모두 샀다.
"그때는 한국화가 황창배씨가 인기있던 시절이고, 사석원위에 잘나가는 선배들이 많았어요. 그런데 그림을 보니 괜찮더라고요."
1988년 3월말, 가나와 전속이된 사석원 이 회장한테 매달 50만원씩 생활비를 받게됐고 그해 결혼도 했다. 현재 호당 100만원 이상을 호가하는 '비싼 작가'로 등극한 사석원은 "목련꽃 꽃봉오리가 터지는 계절, 가나와 함께 맞는 스물여섯번째 봄"이라며 가나와의 인연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가나아트센터가 개관 30주년을 맞아 26일부터 컨템포러리 에이지(CONTEMPORARY AGE):작가와 함께한 30년'전을 연다. 가나와 동고동락했던 작가들과의 추억을 돌아보는 전시다.
13년전부터 가나아트에서 손을떼고 서울옥션에 집중하고 있는 이 회장은 이번 전시에 나온 작품을 보며 "종로경찰서 경찰이 소개해 인연이 된 전병현, 뉴욕에서 달러 한뭉치로 이어진 박영남, 유영교 작가 대신 이태리 카라라에서 만난 한진섭 작가의 만남이 눈에 선하다"며 꼬리를 물고 이어진 작가들과의 인연을 풀어냈다.
또 1988년 유홍준교수의 소개로 만난 민중미술작가 임옥상의 그림을 보고 이런 그림도 있구나 충격을 받고 전시된 그림 7점을 모두 샀던 기억도 끄집어냈다.
"당시 민중미술 작가들을 만나보니 가장 작가스러운 작가들이었다. 특히나 그동안 안보였던 미술이어서 관심이 갔다"는 이 회장은 "당시 작품가격도 쌌다. 덕원미술관에서 열린 민중미술전 작품을 모두 650만원에 구입했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림 산다고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종로경찰서에도 몇차례 불려가기도 했었어요" 이후 이회장은 당시 수집한 민중미술작품 200여점을 "우리미술의 보물"이라며 서울시립미술관에 기증해 화단을 놀라게 했다.
이 회장은 '작가와 화상은 경쟁관계다'고 했다. 조각가 한진섭은 '작가가 하고자 하는대로 해주는 화상'이라며 "가나아트는 정신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든든한 후원자"라고 했다.
가나아트센터 이옥경대표는 "가나화랑 경리를 맡았을때는 오빠(이회장)의 행동이 납득이 되지않았었다"고 했다.
"그때는 살림이 넉넉치 않은데도 작가들이 운송료좀 도와달라면 한번도 NO를 한적이 없었요." 하지만 화랑을 운영하면서 작가들의 소중함을 깨달았다는 이 대표는 "오빠가 존경스럽다"는 말로 화랑대표로서, 남매로서 애정을 보였다.
이번 전시는 고암이 내주었던 '군상 시리즈'을 포함 가나아트와 지난 30년간 동반자의 길을 걸어온 역대 전속작가와 중견·원로 작가 50여 명의 회화, 조각, 사진 등 70여점을 한자리에서 선보인다.
이응노, 김병기, 김훈, 하인두, 최종태, 윤명로, 이종상, 이숙자, 권순철, 이왈종, 유영교, 이상국, 박항률, 배병우, 김아타, 오치균, 전병현, 사석원, 김남표, 도성욱, 이동재, 지용호 등이 참여한다. 화상과 작가의 관계가 어떻게 미술시장 흐름을 형성해왔는지 살펴볼수 있는 자리이기도 하다. 전시는 6월 9일까지. (02)720-1020.
출품한 사석원 박항률 유선태의 작품이 전시된 가나아트 개관 30년 기념전시장./사진=박현주기자 |
젊은스타작가 지용호 안성하 도성욱등의 작품도 출품됐다./사진=박현주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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