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지난 17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발표된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의 발표문 중 마지막 문구>
수행사와 개발자를 다그쳐서 빡빡한 기간 내에 프로젝트를 완성해야 하는 주관사·발주사와 그 속에서 야근과 주말근무에 시달리는 개발자들의 입장 차이를 보여주는 말이다.
이처럼 서로의 입장이 다른 상황에서 창의성의 발휘가 가능한 근무환경과 원활한 프로젝트 진행을 위한 해결책으로 △회사의 불법행위에 대한 철저한 관리·감독 △수수료의 현실화 △만연한 ‘갑을문화’ 개선 등이 꼽혔다.
첫째로 근로기준법의 준수 여부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관리와 감독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농협정보시스템에서 2년 동안 연간 4000시간을 근무하며 폐렴진단을 받아 오른쪽 폐의 절반을 잘라내는 수술을 받은 개발자 양모 씨의 사례에서 보면 당시 고용노동부의 담당 근로감독관은 조사를 하지 않았다.
해당 감독관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신고가 한 두건 들어오는 것도 아니고 당시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최근 민주당 장하나 의원이 양씨의 사례에 대해 고용노동부의 특별 근로감독을 요구하는 등 당시 사건이 언론에 다시 오르내리자 고용노동부는 지난달 24일 농협정보시스템의 근로감독을 실시했다.
고용노동부는 △근로기준법 제17조: 계약직근로자 근로계약서 중 임금구성항목 △근로기준법 제53조: 근로자 10명의 연장근로시간, 주 12시간 초과 △근로자 연장근무 등 근로시간에 대한 자료 미비 등을 법 조항 위반으로 판단하고 이에 대해 시정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농협정보시스템 관계자는 “오는 20일까지 개선계획을 제출할 예정”이라며 “부족한 인원의 규모를 파악 중이며 완료되면 추가로 정규직을 채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이 회사의 직원은 384명이다.
한국정보통신산업노동조합은 “IT 노동자의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보다 초과 노동에 대한 규제가 가장 시급하다”며 “새로운 제도보다 이미 존재하는 노동법의 철저한 적용이 우선”이라고 밝혔다.
여러 단계를 거치며 업체들이 가져가는 수수료의 현실화도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주관사와 계약을 맺고 개발자를 고용하는 인력파견업체들은 개발자들의 인건비로 받는 비용의 10~20%를 가져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단계를 여러 번 거치다보니 결국 개발자 몫은 애초에 할당된 것보다 크게 줄어들 수밖에 없다.
프리랜서로 활동 중인 김모씨는 “개발자가 영업까지 하기에 힘이 부치다보니 프로젝트를 안내해주는 업체가 필요하긴 하다”며 “하지만 업체가 프로젝트 투입 후에는 따로 하는 일이 없는 만큼 인력 알선 수수료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수직적 하도급 체계 속에서 만연한 ‘갑을 문화’의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재왕 소프트웨어개발환경 개선위원회 대표는 “개발자들을 함께 일하는 파트너가 아닌 사업의 목적을 위해 언제든 희생할 수 있는 부품 같은 존재로 인식하는 마인드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 대표는 노사정위원회와 함께 개발자를 보호하기 위한 대기업과 공공기관이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을 제작해 배포할 계획이다.
무리한 야근을 강요하는 등의 불공정한 행위는 창의성의 발휘나 프로젝트 진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다는 취지의 가이드라인이다.
이 대표는 “SW 개발을 공장의 조립 라인처럼 인원을 투입하면 된다는 식으로 진행하면 영원히 좋은 품질의 서비스는 나올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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